<결못남>, 어설픈 삼각관계로의 퇴행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9.07.29 12:57  수정

이야기 풀어나가는 한-일 드라마의 차이

원작에 비해 캐릭터의 내면 변화를 간과한 한국판 <결혼 못하는 남자>

KBS 월화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이하 결못남)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2006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동명의 일본 원작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못남>은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간관계에 서투른 중년의 독신남 조재희(지진희 분, 일본판 쿠와노 신스케)가 외과의사 장문정(엄정화 분, 일본판 하야사키 나츠미)을 비롯한 다양한 이웃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회적인 소통’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초반부 원작의 주요 에피소드를 충실히 따라가며 일본판 원작을 그대로 갖다 붙인 것 같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던 <결못남>은 중반부터 조재희와 장문정의 로맨스를 비롯해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을 추가, 점차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종영을 앞둔 <결못남>은 어느새 조재희와 장문정, 정유진(김소은 분)으로 이어지는 식상한 삼각관계 구도에서 헤매며 드라마가 추구해야할 본래의 노선을 벗어났다.

일본판 <결못남>은 현대 사회에서 독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였다. 날로 늘어나는 독신남녀들과 그에 비례해 품위 있는 ‘싱글라이프’를 추구하고자하는 현대인들의 관삼사가 그 안에 녹아있었다.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쿠와노 신스케의 캐릭터는 연애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성취의 욕구가 더 강한 현대판 ‘초식남’의 트렌드를 상징한다.

물론 일본판에도 쿠와노와 나츠미의 로맨스 구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옆집 여자인 미츠루(한국판 정유진)와의 삼각구도는 원작에서도 있던 에피소드다.

하지만 밀고 당기는 연애담 자체에 치중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던 독신남녀들이 주변과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소통’에 더 주목하고 있다.

실생활에서 만난다면 이기적이고 피곤할 쿠와노의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남들 다하는 결혼이나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삶의 태도가 매력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현대 독신남녀들의 관심사가 반드시 연애나 결혼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바로 쿠와노의 캐릭터인 것.

하지만 한국판의 조재희는 연애나 결혼의 가치를 부정하면서도 배배 꼬인 삼각관계-사각관계의 틀에서 허우적댄다.

장문정 외에도 ‘오피스 와이프’인 윤기란(양정아 분)이 있고, 옆집에는 ‘싸우다가 정들어가는 이웃’ 정유진이 있다. 여기에 원작보다 부쩍 늘어난 조연 캐릭터와 곁가지 에피소드들이 끼어들며 이야기는 몹시 산만해진다.

쿠와노가 ‘결못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물의 내적 변화를 보여주는데 집중하던 일본판과 달리, 한국판은 이야기의 스케일은 더 키운 듯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결과가 ‘뻔한’ 맥 빠진 짝짓기 놀이에만 치중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조재희와 장문정의 캐릭터에서 굳이 멜로 구도가 아니더라도 뽑아낼 수 있었던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을 대거 놓친다.

갑작스럽게 ‘결못남’에서 ‘인기남’으로 변신한 조재희의 캐릭터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야기는 리얼리티를 상실한 채 식상한 로맨틱 코미디의 재탕에 머물고 있다.

불혹의 중년들이 순진한 20대의 로맨스를 흉내 내는 척하는 모습이 한국판 <결못남>의 후반부 풍경인 셈이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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