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용수·부지 등 입지 조건 우선 강조
키옥시아·라피더스와 협력 확대 가능성도 열어
호남 공장론엔 삼성·SK "정해진 바 없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10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 대담 참석 뒤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SK
정치권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권 신규 투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차기 반도체 생산 거점의 유력 후보로 일본을 공개 언급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력과 용수, 부지, 인력 등 생산 인프라를 갖춘 곳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1일 재계 및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인터뷰에서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해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며 해외에 신규 공장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차기 생산 거점과 관련해 "일본은 훌륭한 후보지"라고 말했다. 일본이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재, 전력 등 생산 공정에 필요한 산업 생태계를 두루 갖췄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 시점과 지역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언제, 어디에 건설할지는 어려운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앞서 최 회장은 도쿄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 특별세션' 참석 뒤에도 해외 투자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어딘가로 가지 않을 수는 없고 준비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안 되면 해외라도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한국에만 짓겠다'는 것도 아닐 수 있다"며 "전력과 땅, 사람, 물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규 공장의 입지를 정치적 요구보다 생산 효율성과 인프라 경쟁력을 중심으로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최 회장의 발언은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반도체 생산 거점을 호남권과 충청권 등 비수도권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기업들에 비수도권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최 회장의 해외 투자 관련 발언을 두고"'한국에서 안 되면'이 아니라 '어떻게 한국에서 되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국회 세미나에서 전남 지역 반도체 공장 설립 제안을 받은 당시에도 "꼭 반도체 공장이 가야 하는지는 고민해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호남권 신규 공장 논의와 관련해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 회장이 일본을 후보지로 거론한 배경에는 기존 현지 사업과 반도체 생태계도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한미일 컨소시엄을 통해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의 주요 주주이자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키옥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경쟁 관계이기도 해 협업에 제약이 있지만 인재와 연구개발, 반도체 생태계 분야에서는 다양한 협력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첨단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지원하는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도쿄일렉트론 등 일본 소재·장비 기업과의 협력도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재계에서는 이달 말 예정된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를 전후로 비수도권 투자 논의가 구체화할지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이 일본의 반도체 생태계를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한 만큼, 국내 신규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기업에 지역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력과 용수, 인력 등 생산 기반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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