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깨운 ‘네오’한 시너지… ‘무한확장’ 브랜딩이 남긴 유산과 장기 과제는
엔시티(NCT)는 케이팝(K-POP) 다인원 아이돌의 가장 거대한 실험이었다. 슈퍼주니어가 프로젝트형 다인원과 유닛 활동의 가능성을 열었고, 엑소가 한국·중국 시장 분할형 다인원을 보여줬다면, 엔시티는 이를 ‘무한확장’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엔시티는 다인원 아이돌이 하나의 팀을 넘어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SM엔터테인먼트
엔시티는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다. 이름부터 고정된 한 팀보다, 멤버 조합과 유닛을 통해 브랜드를 확장하는 구조를 전제로 했다. 엔시티 유(U)는 곡과 콘셉트에 따라 멤버 조합이 달라지는 유닛이고, 엔시티 127은 서울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엔시티 드림(DREAM)은 청소년 팀으로 출발해 고정팀으로 자리 잡았고, 웨이션브이(WayV)는 중화권 시장을 향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엔시티 위시(WISH)까지 합류하며 계속 확장되는 브랜드로 운영됐다.
지금은 엔시티의 모든 유닛이 케이팝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데뷔 초에는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고정 멤버와 고정 팀 서사에 익숙했던 케이팝 팬덤에게 엔시티의 구조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멤버가 많고, 유닛이 나뉘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올 수 있다는 설정은 신선했지만 동시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엔시티가 정확히 몇 명이고, 어떤 유닛을 좋아해야 하는지 등을 이해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엔시티의 다인원 구조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공연과 팬 이벤트가 제한되면서 유튜브, 자체 예능, 관계성 콘텐츠 소비가 커졌고, 이 환경에서 많은 멤버와 다양한 조합은 약점보다 강점에 가까워졌다. 멤버 수가 많다는 것은 곧 조합이 많다는 뜻이었고, 팬들은 음악 활동뿐 아니라 멤버 간 관계성, 유닛 조합, 자체 콘텐츠를 통해 엔시티 시스템에 익숙해져 갔다.
특히 대면 활동이 전면 중단된 시기, 이들의 다인원 구조는 케이팝 팬덤의 신종 문화와 맞물리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당시 팬덤 내에서는 포토카드 수집과 이를 위한 앨범깡(음반 언박싱) 트렌드가 유행이었는데, 자신이 원하는 멤버의 포카를 뽑기 위해 부피가 작고 보관이 용이한 키노(Kihno) 버전 앨범을 수십 장씩 쌓아놓고 개봉하는 ‘엔시티 앨범깡 브이로그’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령했다. 이는 팬덤의 결집력을 높이는 동시에 음반 소비를 견인하는 원동력이 됐다. 당시 발매된 정규 2집 ‘레조넌스’(RESONANCE) 시리즈는 파트 1이 약 146만장, 파트 2가 약 121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더블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엔시티는 개방성과 확장성이라는 기존 공식을 따르지 않는 시스템으로 화제를 모았다”며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SM이 30년간 쌓아온 시스템과 노하우를 가장 잘 활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엔시티라는 IP와 ‘네오함’을 각 유닛의 개성으로 풀어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해 시너지를 냈다는 점은 업계에서도 새롭고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엔시티 2020 ⓒSM엔터테인먼트
엔시티 2020 이후 각 유닛의 체급은 케이팝 최상위권으로 수직 상승했다. 코로나19 이전 만 명 규모의 아레나급에 머물던 엔시티 127은 2022년 국내 최대 규모 공연장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입성하며 단일 투어로만 전 세계 70만 관객을 동원했다. 고정팀이 된 엔시티 드림 역시 단일 음반 판매량 400만장을 돌파하는 대형 유닛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출발한 엔시티 역시 무한확장 구조를 온전히 유지하지는 못했다. 멤버와 유닛이 늘어날수록 팬덤 유입 통로는 넓어졌지만, 동시에 팀 정체성은 복잡해졌고 유닛별 팬덤 분화도 커졌다. 결국 엔시티는 위시를 끝으로 무한확장을 마무리했는데, 엔시티가 다인원 브랜드의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무한확장 모델이 장기 운영 단계에서는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표적인 전환점은 엔시티 드림이었다. 엔시티 드림은 데뷔 당시 나이에 따라 멤버가 졸업하는 시스템을 전제로 했지만, 2020년 졸업제를 폐지하고 이듬해 마크가 복귀하면서 고정팀으로 전환했다. 이는 무한확장 시스템 안에서도 팬덤 안정성과 팀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멤버를 교체하며 계속 새로움을 주는 방식보다, 같은 멤버가 쌓아가는 관계성과 성장 서사가 팬덤 결집에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동시에 엔시티가 처음 내세웠던 무한확장의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졸업과 영입을 통해 계속 순환하는 구조 대신, 특정 멤버 구성의 안정성을 택했기 때문이다. 엔시티 위시를 마지막으로 무한확장을 마무리하겠다는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엔시티는 더 이상 계속 새 멤버와 새 유닛으로 갱신되는 브랜드라기보다 기존 유닛을 관리하는 그룹이 됐다.
이 변화는 장기 운영 단계에서 더 뚜렷해진다. 다인원·다유닛 구조는 멤버 공백을 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확장이 멈춘 상태에서는 핵심 멤버의 이탈이 곧 각 유닛의 전력 변화로 이어진다. 실제로 마크는 지난 4월 SM과의 전속계약 종료와 함께 엔시티 활동을 마무리했다. 엔시티 드림은 한때 졸업제를 폐지하며 7인 고정팀으로 안정성을 얻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멤버 이탈과 재편이라는 일반 아이돌 그룹의 장기 운영 문제 앞에 서게 된 셈이다.
엔시티 위시 ⓒSM엔터테인먼트
이 때문에 일부 팬들은 무한확장 중단을 아쉬워한다. 엔시티 팬 A씨는 그룹의 확장 구조를 브랜드의 원동력으로 봤다. A씨는 “케이팝 시스템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엔시티의 유닛 구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계속 새로운 멤버와 유닛이 들어오며 젊은 팬덤을 유입시키는 것이 엔시티라는 브랜드를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엔시티 위시 이후 새 멤버 영입을 하지 않는다는 방향에 대해서도 “무한확장을 정체성으로 삼았던 팀인 만큼 다소 당황스러웠다”며 “케이팝 팬덤 안에서 팬들이 여러 팀을 오가며 유입되는 구조라면, 확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엔시티 브랜드 유지에 더 맞는 방식일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최근 콘텐츠 환경에서도 다인원 구조가 유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요즘은 쇼츠처럼 짧은 콘텐츠로 멤버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시대”라며 “개개인의 매력이 많다면 오히려 다양한 멤버와 조합을 많이 공급하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 역할을 가장 직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팀이 엔시티 위시다. 데뷔 3년 차를 맞은 이들은 비교적 어린 멤버들로 구성되어 브랜드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다인원과 유닛 체제의 유연성을 살린 숏폼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 케이팝 남자 아이돌 공식 계정 최초로 유튜브 쇼츠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무한확장이 멈춘 뒤에도 엔시티가 낡은 브랜드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자, 새로운 팬덤을 잇는 연결고리로 기능하는 배경이다.
다만 엔시티 위시 역시 시간이 지나 고연차에 접어들면 질문은 다시 남는다. 그동안 엔시티는 새 멤버와 새 유닛을 통해 브랜드를 갱신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다면, 엔시티가 내세워온 ‘네오’라는 정체성은 유닛별 독립 활동과 기존 팬덤 관리만으로 유지돼야 한다. 이는 엔시티가 다른 장수 아이돌 그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제 앞에 서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엔시티 10년은 다인원 아이돌이 하나의 브랜드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무한확장은 팬덤 유입과 콘텐츠 확장을 가능하게 했고, 유닛 체제는 멤버와 시장을 나눠 보여주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장기 운영 단계에 들어선 지금, 엔시티의 과제는 더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커진 브랜드를 어떻게 젊고 유효하게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