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 숨기기 Vs 드러내기?…중요한 건 새 곡의 감흥과 정체성
‘마카레나’를 샘플링한 르세라핌(LE SSERAFIM)의 정규 2집 타이틀곡 ‘붐팔라’(BOOMPALA)가 케이팝(K-POP) 샘플링을 둘러싼 질문을 다시 꺼내들었다. 최근 케이팝에서 샘플링은 낯선 작법이 아니지만, 원곡의 존재감을 새로운 곡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르세라핌 ⓒ쏘스뮤직
29일 음원사이트 멜론에 따르면 지난 22일 발매된 ‘붐팔라’는 톱100 차트에서 48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전작 ‘스파게티’(SPAGHETTI)가 같은 차트에서 여전히 55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더딘 출발이다.
‘붐팔라’는 ‘마카레나’의 핵심 리듬과 후렴구인 ‘에이 마카레나’ 파트를 곡의 하이라이트에 두며 화제를 모았다. 1996년 발매된 ‘마카레나’는 공개된 지 오래됐지만 아직까지도 후렴구를 들으면 손동작, 단체 안무까지 함께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틱톡 등 숏폼에서도 챌린지로 재소비되며 젊은 세대에게도 다시 노출됐다. 이처럼 원곡의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는 노래를 샘플링하는 것은, 원곡의 향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선택이다.
르세라핌은 앨범 발매 전 진행한 라운드 인터뷰에서 ‘마카레나’ 샘플링을 두고 전 세계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의도를 전했다. 허윤진은 “장르가 라틴 쪽이다 보니까 리듬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룹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퍼포먼스를 더해 현재의 마인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샘플링은 기존 곡의 일부 멜로디, 리듬, 사운드, 보컬 구간 등을 가져와 새 곡의 재료로 활용하는 작법이다. 원곡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잘게 쪼개 쓰는 방식도 있고, 반대로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유명 구간을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도 있다.
이 전략은 케이팝에 점차 녹아들고 있다. 지난 4월 정규 1집으로 컴백한 엔시티 위시(NCT WISH)의 ‘오드 투 러브’(Ode to Love)는 아일랜드 록밴드 더 크랜베리스의 ‘오드 투 마이 패밀리’(Ode to My Family)를 샘플링해 국내에서는 ‘개그콘서트’ 배경음으로 알려져 있는 ‘뚜 뚜루뚜’ 멜로디를 가져왔다.
아이브(IVE)의 ‘애티튜드’(ATTITUDE)도 미국 싱어송라이터 수잔 베가의 ‘탐스 다이너’(Tom's Diner)를 샘플링했다. 원곡의 핵심이 되는 ‘따따 따라’의 멜로디를 가져오되 음을 높여 발랄한 파트로 변주했고, 이는 ‘폭주기니 챌린지’라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애니메이션 ‘더 파이브 스타 스토리스’ OST ‘우아한 탈주’를 도입부에 활용한 아일릿(ILLIT)의 ‘빌려온 고양이’(Do the Dance), 독일 4인조 그룹 크라프트베르크의 ‘트랜스 유럽 익스프레스’(Trans Europe Express)와 아프리카 밤바타 더 소울소닉 포스의 ‘플래닛 록’(Planet Rock)의 사운드를 활용한 에스파(aespa)의 ‘슈퍼노바’(Supernova) 등 최근 케이팝에서는 과거의 멜로디와 리듬을 새 곡 안으로 끌어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한 가요계 관계자는 “샘플링은 익숙한 멜로디를 통해 곡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원곡을 아는 세대에게는 향수를 주고, 원곡을 모르는 세대에게는 새 곡을 통해 다시 유행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사례와 ‘붐팔라’의 차이는 원곡이 새 곡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있다. 일부 곡들이 원곡의 멜로디나 정서를 팀의 콘셉트 안에 자연스럽게 녹였다면, ‘붐팔라’는 원곡의 가장 유명한 구간을 후렴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는 샘플링을 배경 장치로 두기보다, 곡의 즉각적인 인지도를 만드는 대표 장치로 활용한 방식이다.
다만 원곡이 강하게 들린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유명한 곡을 샘플링하는 것 자체가 샘플링의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곡이 너무 연상된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샘플링의 완성도를 따지는 것은 샘플링에 대한 오해”라며 “중요한 것은 샘플링을 해서 완성된 곡이 얼마나 감흥을 주느냐”라고 짚었다.
이 지점에서 ‘붐팔라’를 둘러싼 반응은 샘플링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케이팝 리스너들이 샘플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로도 읽힌다. 케이팝 팬덤은 대체로 팀의 고유한 색과 콘셉트 완성도를 중시한다. 샘플링 작법상 원곡을 알아보게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케이팝 시장에서는 원곡의 존재감이 팀의 색을 강화하는지, 반대로 가리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원곡이 유명하다고 샘플링이 곧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레드벨벳(Red Velvet)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은 바흐 ‘G선상의 아리아’를 발레코어를 기반으로 한 앨범 콘셉트 안에 재배치했다. 원곡의 우아함은 남았지만, 레드벨벳 특유의 기묘하고 화려한 세계관 안에서 새 의미를 얻었다. 블랙핑크(BLACKPINK)의 ‘셧 다운’(Shut Down)은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를 힙합 기반의 비트와 퍼포먼스 안에 넣어 팀의 태도와 자신감으로 전환했다. 두 곡은 원곡이 유명했지만, 샘플이 새 곡의 콘셉트와 퍼포먼스를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샘플링의 성패는 원곡을 새로운 곡 안에서 어떤 역할로 기능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원곡의 존재감이 강할수록 새 곡의 메시지와 퍼포먼스, 팀의 색깔이 함께 설득돼야 한다. 익숙한 멜로디는 청자를 빠르게 끌어들이지만, 그 익숙함을 넘어 곡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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