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차 이기려면 중국 기술부터"…글로벌 車업계의 불편한 의존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6.05.27 06:00  수정 2026.05.27 06:01

전기차·배터리·ADAS 주도권 쥔 중국 생태계

현대차, 모멘타·CATL 앞세워 중국 재공략

폭스바겐·아우디·BMW·벤츠도 中 기술 수혈

시장 진입용 합작에서 ‘기술 동맹’으로 협력 공식 변화

위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중국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과거엔 현지 판매를 위해 합작공장을 세우는 시장에 불과했으나, 전기차 전환 이후 배터리, 전기차 플랫폼, 소프트웨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까지 갖춘 기술 공급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 기업과 손을 잡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중국 기업과 협력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전략을 다시 세우고 있다. 기존엔 독자 방식으로 만든 자동차를 중국에 수출하거나, 중국 공장에서 생산했다면 최근엔 중국 현지업체와의 협력으로 만든 전기차를 중국 시장에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열린 오토차이나 2026에서 중국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V’를 공개하며 중국 전략을 다시 짰다. 현대차는 베이징현대를 통해 향후 5년간 중국에서 20개 신차를 투입하고, 2030년 중국 연간 판매 50만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아이오닉 V의 기술 구성이다. 아이오닉 V에는 중국 자율주행 기술기업 모멘타의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되고, 배터리는 CATL과 협력한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다시 승부를 보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전기차와 자율주행의 핵심 축은 중국 현지 업체의 힘을 빌린 것이다.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은 앞서 베이징현대에 11억달러 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과거의 베이징현대가 내연기관차 생산·판매 합작사였다면, 앞으로의 베이징현대는 중국형 전기차와 스마트카를 만드는 현지 개발 거점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가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중국 전용 모델 ‘아이오닉 V'를 공개하고 있다.ⓒ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독일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은 더 노골적이다. 폭스바겐은 샤오펑과 손잡고 중국 전용 전기차에 들어갈 전자·전기 아키텍처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른바 ‘차이나 일렉트로닉 아키텍처’를 통해 제어장치 수를 줄이고, OTA와 자율주행 기능 확장을 쉽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2026년부터 중국에서 생산되는 폭스바겐 전기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아우디도 중국에서 별도 공식을 쓰고 있다. 아우디는 SAIC와 손잡고 중국 전용 전기차 브랜드 ‘AUDI’를 만들었고, 첫 양산 모델 E5 스포트백을 상하이 안팅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우디는 이 협력을 두고 '독일식 엔지니어링과 중국의 첨단 혁신을 결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의 상징이던 아우디조차 중국에서는 현지 파트너의 플랫폼·생산·디지털 역량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BMW는 모멘타와 중국 전용 ADAS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적용 대상은 중국형 노이어 클라쎄 모델부터다. BMW는 중국의 도로 환경, 교통 흐름, 소비자 기대에 맞춘 보조주행 기능을 개발하고 있다.


벤츠 역시 모멘타 소프트웨어를 최소 4개 중국형 모델에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프리미엄 3사가 모두 중국 스마트카 기술을 외면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일본차도 중국 기술 수혈에 나섰다. 토요타는 GAC와 함께 중국형 전기차에 모멘타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화웨이의 차량용 운영체제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 전용 전기 세단 bZ3는 BYD와 공동 개발한 대표 사례다.


토요타가 하이브리드에서는 세계 최강자지만,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는 배터리와 소프트웨어를 현지 업체에 기대는 구조가 된 것이다. 혼다도 CATL과 LFP 배터리, 차체 일체형 배터리 기술, 공급망 최적화 등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협력의 범위는 중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판매를 위해 중국 업체와 손을 잡기도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 업체의 기술을 택하는 업체가 늘고 있어서다. 사실상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중국 업체의 기술을 받아들인 셈이다.


허샤오펑 샤오펑 회장이 24일 중국 베이징 모터쇼에서 신차와 지능형 주행 기술을 발표하고 있다.ⓒ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스텔란티스는 중국 전기차 업체 립모터에 약 15억유로를 투자해 지분 약 21%를 확보했고, 양사가 세운 립모터 인터내셔널을 통해 유럽, 중동, 아시아·태평양, 남미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또 중국 둥펑과 유럽 내 합작을 추진하며, 둥펑의 전기차 브랜드 보야 차량을 유럽에서 생산·판매하는 방안까지 꺼냈다. 중국 업체의 기술과 제품을 글로벌 완성차의 유통망·공장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르노와 지리의 합작도 같은 맥락이다. 양사는 HORSE Powertrain을 세우고 하이브리드·내연기관·변속기·배터리 솔루션을 포함한 파워트레인 사업을 공동으로 키우고 있다. 전기차는 물론 하이브리드와 저탄소 내연기관 영역에서도 중국 업체가 글로벌 밸류체인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완성차와 중국 업체 간 협력이 수년 사이 크게 변화했음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 차를 팔기 위해 현지 업체와 공장을 세우는‘시장 진입형 합작’ 방식이 초기의 협력 방식이었다면, 두 번째는 중국 현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협력하는 ‘기술 수혈형 동맹’으로, 더 나아가 중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한 ‘글로벌 확장형 파트너십’으로 변화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더 이상 값싼 부품 공급자나 현지 합작 파트너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는 불편한 현실"이라며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 기술을 써야 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 전기차와 맞서려면 중국식 속도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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