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총파업 위기 넘겼지만…법조계 "필수유지업무 법령 정비 시급"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6.05.21 16:48  수정 2026.05.21 16:50

파업 90분 앞두고 성과급 합의안 도출…'특별경영성과급 10년 지급' 절충

수원지법 "웨이퍼 변질 방지 인력 유지" 가처분 인용…노조 압박 카드 작용

법조계 "산업별 필수유지업무 지정 한계…분쟁 시마다 법원 개별 판단 부담"

ⓒ연합뉴스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고 시점을 불과 90분 앞두고 20일 극적인 타결을 이뤄냈다. 성과급 분배 방식을 두고 막판 조율에 성공하면서 우려됐던 반도체 생산 차질 사태는 당장 피하게 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 과정에서 나온 법원의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 결정은 향후 산업계 전반의 노사 분쟁과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둘러싼 법리적 공방에 중요한 전례를 남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산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전날 핵심 쟁점이었던 초과이익성과급(OPI)의 기존 상한제도를 유지하되 상한이 없는 주식 형태의 '특별경영성과급'을 향후 10년간 별도 지급하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재원은 노사 합의로 선정한 사업 성과의 10.5%로 책정됐으며, 적자 사업부에는 패널티를 적용하기로 했다. 노조는 오는 22일부터 27일까지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해 합의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극적 타결의 배경에는 파업 사흘 전인 지난 18일 나온 수원지법 민사31부(신우정 부장판사)의 가처분 결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법원은 사측이 제일 우려했던 안전보호시설 운영 및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 등에 대해 '평상시와 동일한 수준의 인력과 가동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며 사측의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사실상 노조의 핵심 파업 방식에 법적 제동이 걸리면서 노사 양측 모두 협상 테이블을 떠나기 어려운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법조계와 노동계는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쟁의행위 시 '필수유지업무' 범위 확정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필수유지업무 규정은 철도, 항공, 병원 등 전통적인 공익사업 위주로 지정되어 있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공정 중단 시 수십조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첨단 제조 산업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법원은 반도체 제조 공정의 특성을 고려해 '웨이퍼 변질 방지'를 사실상 필수유지 업무에 준하는 보안 작업으로 판단했으나, 이를 모든 산업 현장에 일괄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향후 대규모 노사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업종과 규모에 따른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법원의 개별 가처분 결정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방법원에 노동쟁의 전담 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만성적인 법관 부족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20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왼쪽부터)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한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

​나아가 올해 3월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역시 향후 노사 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합의로 삼성전자 자체 파업 위기는 일단락됐지만, 하청 노조가 원청인 삼성전자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성과급 문제를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노조법 체계가 다변화된 산업 구조와 개정 법률 간의 충돌을 매끄럽게 조율하지 못하고 있어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앞선 법원의 결정은 필수공익사업 규정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쟁의행위 정당성의 한계와 회복하기 곤란한 손해 방지를 고려한 판단"이라며 "반도체 생산 자체를 유지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설비 손상이나 제품 변질 방지 등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유지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철도나 병원 등은 법률상 필수유지업무 범위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첨단 제조업은 어느 공정이 필수적인지 그 범위가 불분명하다"며 "첨단산업의 파업 규율이 법률보다 판례나 가처분에 의존하게 된다면 불확실성이 커지고 판례가 일관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최첨단 산업 특수성을 고려해 공공성 높은 산업의 범위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법 전문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결국 현재로선 매번 발생하는 대규모 노사 분쟁마다 법원이 개별 가처분으로 필수유지 범위를 확정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첨단 산업 전반의 하청 노조 쟁의행위 시에도 이번과 같은 가처분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지, 복잡해진 원·하청 관계 속에서 필수유지업무의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가 향후 법조계와 산업계의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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