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1월 9일부터 표기 의무화 실시
소주·맥주·위스키·와인 등에 전면 적용
담뱃갑처럼 '혐오그림 경고' 삽입 가능
업계 "부정 이미지 고착…소비 감소 가속화"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소주 상품이 진열돼 있다.ⓒ뉴시스
정부가 오는 11월부터 모든 주류 용기와 광고에 '음주운전 금지' 경고 그림 부착을 의무화하면서 주류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주류업계와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가뜩이나 주류 소비가 감소하는 가운데 이 같은 규제가 소비심리 위축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주류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및 고시를 개정하고 오는 11월 9일부터 제도를 본격 시행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임신 중 음주 위험’이나 ‘과도한 음주의 건강 위해성’을 알리는 수준이었던 경고 문구는 앞으로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그림 형태의 경고 표시도 가능해진다. 담뱃갑에 삽입된 질병 그림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그림 경고가 소비자 주의를 더 직관적으로 끌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소주와 맥주를 비롯해 전통주, 수입 신고되는 위스키 등 모든 주류 제품에 전면 적용된다.
과음 경고문구 및 경고그림 표기방법 표준안. ⓒ보건복지부
음주로 인한 건강 피해와 음주운전, 주취 폭력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정부의 입장에 따라 주류업계에서도 제도 도입 취지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헬시 플레저'(건강 관리) 문화가 확산하며 주류 소비가 감소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경고 문구 및 그림 도입이 주류 소비 위축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5년 401만4872㎘에서 2024년 315만1371㎘까지 감소했다. 10년 새 약 22% 줄어든 수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5 주류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월 1회 이상 음주자의 월 평균 음주 빈도는 8.8일로 전년(9.0일)보다 줄었고, 하루 평균 음주량도 6.7잔에서 6.6잔으로 감소했다. 특히 20대의 음주 빈도와 소비량은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담뱃갑에 질병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고 그림이 흡연율 감소에 기여한 것처럼, 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퍼지면 지금보다 더 큰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술을 팔아야 마진이 남는' 자영업자들의 고충도 있다.
경기도에서 소규모 주점을 운영하는 이진범(33) 씨는 "자영업자들에게 주류 판매는 핵심 수익원"이라며 "보기만 해도 무서운 경고 그림이 삽입 된 술병을 보는 소비자들이 주류 주문을 하지 않게 될 경우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통주 모습(자료사진). ⓒ뉴시스
'주류 용기 자체의 디자인적 훼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위스키와 와인, 전통주 시장에서는 병 디자인에 양각·음각을 새겨 넣어 브랜드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정판 위스키나 아트 컬래버레이션, 고가 제품의 경우 병 자체만 거래하거나 수집하는 소비층도 있다.
일부는 음용 이후에도 병을 인테리어 소품이나 컬렉션 형태로 보관하는 만큼, 병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높다.
전통주 업계도 마찬가지다. 안동소주·이강주·문배주 등은 한국 고유의 문양을 새겨 넣어 장인정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명절이나 기념일 선물용 수요도 많은 만큼, 업계에서는 병 전면 경고 그림이 전통주 특유의 이미지와 상품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병과 라벨이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인 위스키·와인·전통주 등의 시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입 주류 업계 관계자는 "위스키나 와인의 경우 예술 작가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병 자체를 디자인 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선호하는 소비층도 많다'며 "하나의 작품이 국가의 규제로 훼손될 수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주류 용기 경고 그림 부착 모형. 태국 타오피팝 림짓뜨라콘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연합뉴스
주류 용기에 경고 그림이나 강력한 경고 문구 부착을 의무화하는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의무화는 아니지만, 지난 2016년 한 와인 브랜드가 자국 내 심각한 음주운전 문제를 꼬집기 위해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 사고 현장 사진을 와인 라벨에 크게 인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국 정부의 경우 지난 2024년 모든 주류 병과 캔 면적의 최소 3분의 1 이상에 담뱃갑과 같은 강력한 혐오 그림(음주운전 사고 피해자, 질병 관련 이미지 등) 부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당시 태국 관광업계와 주류업계에선 "무서운 경고 문구와 그림은 예술적인 주류 용기의 독특한 디자인을 훼손할 것", "주류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후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