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AI로 바이러스 조립 원리 재현한 단백질 구조체 설계 성공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6.05.21 00:02  수정 2026.05.21 00:02

이상민 포항공대 화공과 교수

바이러스 모방 인공 단백질 구조 개발

바이러스 캡시드 원리 모사

백신·치료제 전달 플랫폼 가능성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연계 바이러스의 조립 원리를 그대로 모방한 대형 단백질 구조체 설계에 성공한 이상민 포항공대 교수(오른쪽)와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연계 바이러스의 조립 원리를 그대로 모방한 대형 단백질 구조체 설계에 성공했다. 백신과 유전자·약물을 실어 나르는 차세대 전달체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상민 포항공과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가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워싱턴대학교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에서 단일 단백질 구성요소가 오각형과 육각형 배열을 동시에 만들며 바이러스와 유사한 형태로 자가조립되는 설계 원리를 개발했다.


자가조립은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하나하나 끼워 맞추지 않아도 분자들이 스스로 정해진 구조를 갖춰 모이는 현상을 뜻한다.


과기정통부의 개인기초연구사업과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이뤄진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한국시간 21일 자정 게재됐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최근 바이오와 의학 분야에서 차세대 약물 전달 기술의 핵심 소재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단백질 나노케이지’다.


이는 여러 단백질이 스스로 결합해 만드는 나노미터 크기의 속이 빈 구조체다. 내부 공간에 약물이나 유전물질, 효소 등을 안정적으로 담을 수 있고 껍질 표면에는 항원을 붙일 수 있다.


기존 설계 기술은 계산을 통한 완벽한 대칭 구조를 만드는 데 치중돼 있다. 하나의 단백질로 만들 수 있는 구조체의 크기가 매우 작고 형태도 단순하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반면 자연계 바이러스는 단 한 종류의 단백질을 수백에서 수천 번 반복해 쓰면서도, 각 단백질이 놓이는 위치와 환경을 미세하게 조절해 거대한 껍질을 완성한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준대칭성’이라 부르며, 이번 연구는 이 고도의 원리를 인공 단백질 설계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껍질이 커지는 핵심 비결이 단백질 블록 사이의 각도와 휘어짐에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단백질이 너무 평평하게 깔리면 껍질이 닫히지 않고, 반대로 너무 많이 휘어지면 구조가 작아지는 특성을 고려했다. 하나의 단백질이 위치에 따라 오각형과 육각형 환경을 동시에 만들도록 정밀하게 설계했다.


구체적으로는 단백질 3개가 뭉친 삼량체 단위를 기본 블록으로 정한 뒤, AI 기반 단백질 구조 생성 도구인 ‘알에프디퓨전’을 이용해 새로운 연결 구조를 만들었다.


마치 조립식 블록을 쌓듯 하나의 단백질이 서로 다른 각도로 맞물리게 함으로써 평평한 판이 아닌 거대한 돔 형태의 껍질을 구현한 것이다.


연구진은 설계한 인공 단백질을 대장균을 통해 실제로 제조한 뒤 최첨단 극저온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단백질들이 스스로 뭉쳐 최소 70㎚에서 최대 220㎚ 크기의 다양한 둥근 껍질들을 형성하는 것을 확인했다. 가장 작은 구조는 정교한 나노 축구공 형태였다. 큰 구조는 그보다 3배 이상 거대했다.


이번 연구는 자연의 바이러스 단백질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AI로 새롭게 창조한 단일 인공 단백질만으로 대형 구조체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표적 약물 및 유전물질 전달체, 백신 항원 제시 플랫폼 등 바이오·의학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리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내부 지지 단백질이나 핵산 등을 주형으로 활용해 구조체 크기를 더욱 균일하게 제어하는 후속 연구도 이어갈 계획이다.


이상민 교수는 “바이러스는 완벽한 대칭만이 정교한 분자 구조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최고의 자연 모방 대상”이라며 “분자 타일 사이의 미세한 각도 변화가 평평한 판을 거대한 돔으로 바꾸듯, 단백질 블록의 국소 구조를 조절함으로써 최종 조립체의 크기와 형태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성과는 국내 우수 연구자가 노벨상 수상자와의 협력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기초연구 역량을 증명해 낸 쾌거”라며 “앞으로도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역량을 증진하고 세계를 선도할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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