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막히자 기업금융 힘 쏟으려
2세대 젊은 회장님들 잡기 나선 은행들
"만능 아니다" 상속 소송·세금 '우려'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가업승계 시장을 겨냥한 자산관리(WM)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은행들이 중소기업 가업승계 시장을 겨냥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 속 기업금융 강화 기조와 창업주 고령화에 따른 수십조원 규모의 승계 시점이 맞물린 결과다.
은행들은 신탁 상품을 앞세워 젊은 CEO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복잡한 상속 소송과 세금 문제가 복병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가업승계 시장을 겨냥한 자산관리(WM)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가업을 물려받는 2·3세대 CEO들은 1세대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금융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1세대 창업주는 자산 포트폴리오 내 금융자산(48.2%)과 부동산(45.7%) 비중이 비슷했지만, 2·3세대 CEO는 부동산 비중(57.3%)이 절반을 웃돌았다.
향후 투자의향 역시 1세대는 주식(63.9%) 선호도가 높았던 반면, 2·3세대는 금(66.7%)과 예술품·미술품(50.0%) 등에서 강한 의향을 드러냈다.
또 부모 세대가 수십 년간 거래해 온 곳이라도 2·3세대 CEO는 과감히 주거래은행을 변경한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혔다.
기업승계 전후로 자신에게 실질적인 세무·법률 도움을 준 은행을 택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2·3세대 CEO의 41.7%는 승계 시점을 전후로 기업금융 주거래은행을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
이유로는 본인의 선호(35.3%), 금리 등 유리한 대출조건(23.5%), 전문성 차이(23.5%) 등을 꼽았다.
이처럼 금융 행태가 바뀌면서 은행권은 젊은 CEO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맞춤형 대응에 나서고 있다.
2·3세대 CEO들은 법인 거래나 대출 업무로 지점을 찾던 1세대와 달리, OTP 보안매체 재발급 등 단순 제신고 업무 처리가 아니면 내점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자산가 고객의 이탈을 막고자 가문 단위의 종합 자산관리를 제공하는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강화하는 추세다.
패밀리오피스란 고액 자산가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고 증식시키는 전문 금융 서비스를 뜻한다.
세무·법률 전문가들이 기업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자문하고, 후계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 안정화를 지원하는 등 비금융 서비스 영역도 세분화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존 우수 고객의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가 크다"며 "차별화된 종합 케어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면 타행을 이용하던 승계 CEO들까지 새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은행권이 유언대용신탁 등 신탁 상품과 패밀리오피스를 앞세워 영업을 전개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법적·세무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이다.
가장 대표적인 리스크는 형제간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이다.
은행들은 신탁 상품에 가입하면 재산을 원하는 자녀에게 분쟁 없이 안전하게 물려줄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실제 법적 실효성은 불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에 대해서는 확립된 대법원 판결이 없고 학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며 "최근 다수의 하급심 사안에서는 유언대용신탁으로 승계된 재산에 대해서도 유류분 반환을 명하는 판결들이 잇따라 선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류분 분쟁 방지만을 목적으로 신탁 상품을 설계하고 마케팅하는 은행권의 방식에는 명백한 법적 한계가 있단 설명이다.
정부의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한 까다로운 세법 요건도 은행 신탁 영업의 걸림돌이다.
최근 정부가 가업상속공제의 한도를 확대하고 사후관리 업종 요건 등을 완화하긴 했지만, 고용 유지나 업종 유지 등 지켜야 할 법적 사후 조건은 여전히 깐깐한 편이다.
이 관계자는 또 "만약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 자녀들은 막대한 상속세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며 "중소기업 특성상 회사의 자산 가치는 높아도 당장 세금을 낼 개인 현금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교한 세무 설계 없이 은행의 신탁 상품만 믿고 있다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세금 부담을 이기지 못해 물려받은 회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승계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우량 기업 고객을 계속 유지하려면, 단순히 신탁 상품을 많이 파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며 "가족 내 분쟁 가능성이나 가업상속 세법 조건을 철저히 방어해 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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