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달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접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패닉 상태의 한국 금융시장
코스피 8000을 넘나들던 한국 증시가 하루 아침에 7400까지 떨어지고 환율도 다시 1달러에 1500원선을 오르내린다. 한국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다. 원인은 단 하나, 현 정부 경제정책 총수인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 때문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초급 사무관이 아니다. 학교에만 갇혀 언론 경험없는 교수 출신도 아니다.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금융정책국장,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차관 등 코스워크를 제대로 거친, 이 정부에서는 경제 정책에 관한 1인자다. 옛날 김대중 대통령의 표현을 빌면, 경제는 김용범이 대통령이다.
고위 공직자의 언어와 여권의 석연찮은 대응
그 정도 되는 고위 공직자라면 와전될 수 있도록 말해서도 안 된다. 달리 해석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 쓰고 말해야만 한다. 지난해 9월 초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김용범 실장은 표현은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얼마지만, 그 중 실제 현금화해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라고. 그렇게 정확하게 분명하게 말하던 김용범이 실언을 했을 리는 별로 없다.
실언이나 오해할 말을 한 자체로 책임을 져야 한다. 혹시라도 암호화폐 회사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 불명확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을 하는 못된 버릇이 들었다면 정말 큰 일이다. 그 업계에서는 분명히 자신들이 자신만만하게 말해놓고는 결과가 나쁘면 오해였다, 식으로 발을 빼는 습관이 있다 하니 말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여당의 태도가 더 큰 문제다. 분명히 처음에는 김용범 정책실장의 사견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정부는 한번 김용범 실장의 사견이라 주장했으면, 끝까지 사견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김용범 실장이 상황을 수습하고 파문이 매듭지어진 뒤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맞다. 그런데 현재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절대로 김용범 실장의 사견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 고위공직자의 언급이 단순한 사견일 수는 없다. 사견에 불과한데 왜 대통령이 친히 나서 가짜뉴스 운운 반격하는가? 왜 사견에 대한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블룸버그 통신에 서한을 보내 항의하는가? 왜 청와대인가? 왜 대통령인가? 혹시 김용범 실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청와대 내에서 공식 조율된 결과는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국민배당금 파문 일지
파문의 전개 과정을 일자별로 살펴보자. 필자가 그 과정을 재구성했다.
김용범 실장이 페이스북에 글 올린 시점은 지난 11일. 그 다음 날인 12일 증시는 오전에 역대급 상승을 보였다. 하지만 당일 오전 11시 블룸버그 통신이 김 실장의 글과 관련, “인공지능(AI) 이익의 배분”이라는 보도를 내놓자 증시는 역대급 폭락을 보였다.
이에 당청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는 김 실장의 글이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여당 수장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당과 사전논의 없었다”고 말했다.
당청의 기류는 13일 이후 급격히 변한다. 13일 이재명 대통령은 김 실장 글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역공했고 그다음날인 14일 당정과 청와대는 실무검토를 착수, 정식 의제화한다. 이어 청와대는 15일 블룸버그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청와대의 의사결정 과정
다음은 이번 파문이 일게 된 과정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다.
30년 공직 경력의 김용범 실장이 독단적으로 장문의 소논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발표할 리가 없다. 대통령에게 구두 보고를 했거나 청와대내 조율을 거쳤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기업의 큰 돈을 온 국민이 나눠 쓰는 것이 평소 소신이므로 흔쾌히 OK 사인을 냈을 것이다. 청와대 청무파트나 민주당에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저소득층의 박수를 받고 여권 압승에 도움될 것이라고 동의했을 것이다.
초기에 김용범 실장의 사견이라 자른 자체가 역설적으로 사견이 아니라는 증거다. 파문이 커지자 OK 사인을 냈던 이재명 대통령이 신속하게 강경 대응을 주도한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국민배당금이란 용어를 섞어 썼을 것이다. 금융세제 전문가인 김용범 실장이 용어를 혼동했을 리 없다. ‘초과세수’라는 어려운 용어보다 ‘국민배당금’이라는 쉬운 표현이 득표에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거리두기에서 강공으로 전환
당정이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전에 실장이 한번 여론을 떠보는 게 좋겠다는 청와대 내 조율 과정이 있었고 파문이 커지자 김용범 실장의 사견으로 가볍게 넘기자고 1차 대응했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지방선거에까지 부정적 영향이 예상되자 다시 가짜뉴스라고 역공을 펼치고 항의서한을 보냈다. 처음에 유화책으로 대응하다 강공책으로 전환한 일련의 시나리오가 그려지는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는 작가가 구상하고 쓴 시나리오의 큰 틀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나 외교, 경제에서는 시나리오대로 가는 법이 별로 없다. 오히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 정치나 외교, 경제 자체의 논리로 굴러간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민배당금 파문
이재명 대통령이 키운 국민배당금 논쟁은 애석하게도 이재명 대통령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소대와 3분대 합해서 국회 300석 가운데 190석을 차지한 거대 여권의 힘은 이미 상당 부분 소실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의 갈등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고 공소취소 특검, 헌법 개정 좌초, 양도소득세 파문 등으로 여권의 동력도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지율은 비슷해도 지지 열기가 전만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배당금은 외국인투자자 이탈, 중도층 과 스윙보터인 20·30대의 이반 등 여권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여권을 더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대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공소취소 특검과 정청래 대표의 잇따른 실수와 함께 국민배당금 파문이 원인으로 지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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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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