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
이서진 고아성 첫 연극 도전.."매일 긴장 속에 무대 올라"
고아성 "마지막씬 목표는 이서진 선배 울리는 것"
“무대에 올라가니 입이 알아서 떠들더라고요.”
30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 이서진이 연극이라는 생소한 무대 위에서 마주한 낯선 경험이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 긴장을 뚫고 터져 나오는 대사들은 130년 전 러시아의 권태를 오늘의 이야기로 치환한다. LG아트센터 서울이 제작한 연극 ‘바냐 삼촌’은, 이서진과 고아성의 입을 빌려 지독하리만큼 평범한 현대인의 민낯을 무대에 펼쳐놓는다.
ⓒLG아트센터
연극 ‘바냐 삼촌’은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홉의 4대 장막극 중 하나로, 평범한 인물들이 겪는 상실과 욕망, 후회, 그리고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담아낸 작품이다. 연극 창작집단 양손 프로젝트의 배우 겸 연출가 손상규가 연출을 맡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서진은 평생 타인을 위해 헌신하다 정작 자신을 잃어버린 삼촌 바냐를, 고아성은 무너지는 현실을 묵묵히 견디는 조카 소냐를 연기한다.
데뷔 후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생소한 세계에 발을 들인 두 베테랑 배우에게 무대는 매일이 새로운 투쟁의 장이다. 이서진은 “여전히 매일 긴장하고 있지만, 막상 올라가면 입이 알아서 떠들고 있다”며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말이 나오는 경험을 하며 몸을 더 자유롭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고아성 역시 압박감이 상당했다. “대사를 잘 외우는 편인데도 잠꼬대로 독백을 하고 있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부담을 실감했다”는 그는 “긴장을 풀기 위해 지드래곤처럼 기지개를 크게 켜며 거드럭거리는 제스처로 마음을 다잡고 들어간다”고 웃어 보였다.
두 배우가 캐릭터에 몰입한 핵심 동력은 ‘보통 사람’으로서의 공감이다. 이서진은 “바냐가 처한 상황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공감 간다”며 “8명 캐릭터 모두의 삶이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하다. 충분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정의했다. 실제 지인들로부터도 캐릭터가 본래 성격과 똑같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LG아트센터
고아성은 러시아 문학 특유의 정서를 ‘루저 감성’으로 해석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개인적으로 루저 문학을 좋아한다. 한국의 현진건, 일본의 디자이 오사무,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 같은 계보가 있는데 그중 최고는 러시아라고 생각한다”면서 “왜, 어떻게 루저가 되었는지를 유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이번 기회가 너무 소중하다. 위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집안을 꾸려가는, 어리지만 기둥 같은 소냐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그가 연기하는 소냐의 구부정한 자세는 손상규 연출의 제스처를 모방하며 완성한 것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는 보통 사람의 뒷모습을 담았다.
배우들의 앙상블을 다진 것은 보드카 한 박스였다. 19세기 배경의 러시아 희곡답게 극 중에는 술이 자주 등장하며 갈등과 화해의 도구로 쓰인다. 이서진은 “보드카 맛을 모르면 그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나영석 PD에게 부탁해 한 박스를 지원받아 연습 초반에 엄청나게 마셨다”며 “술 덕분에 배우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고 그 유대감이 무대 위 완벽한 호흡의 밑바탕이 됐다”고 전했다.
원작의 건조함을 넘어 ‘다정함’이라는 새로운 정서를 무대 위에 얹은 점도 인상적이다. 고아성은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다정함이라고 생각했다”며 “쑥스럽더라도 그 온기를 관객에게 직접 건네는 소냐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장면에서 서진 선배님을 울리는 게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눈물이 쉬운 분이었다”며 웃었다. 이에 이서진은 ““평소 위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바냐로서 받는 소냐의 위로는 특별했다.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지’라는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묻자 고아성은 “서진 선배가 연극을 한 번 더 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서진은 “아성이가 동아연극제 연극상 받는 것”이라고 답했다.
연극 ‘바냐 삼촌’은 오는 5월 3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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