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리 “나의 원동력은 자유, 연출 도전은 누군가의 기회” [27th JIFF]

데일리안(전주)=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05 12:28  수정 2026.05.05 12:28

'나의 사적인 예술가' 하반기 국내 개봉 예정

한때 시인이었지만 지금은 뉴욕 우체국에서 일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에드가. 수십 년 전 그가 펴낸 시집에 열광하는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이 나타나며 시작되는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예술과 자아, 그리고 시간의 궤적 속에서 재발견되는 창작자의 정체성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비평가이자 감독인 켄트 존스가 메가폰을 잡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총괄 프로듀싱과 ‘메이 디셈버’ 새미 버치의 각본이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윌렘 대포와 그레타 리가 주연을 맡았다.


그레타 리는 이 작품이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전주를 찾았다.


글로리아는 젊은 예술가 집단에서 유일한 여성 배우로, 자신의 과거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채 비밀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글로리아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일상의 대화조차 마치 무대 위 연기처럼 끌어올리며, 연극을 연상시키는 말투와 과장된 제스처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글로리아는 아주 구체적인 '올드 할리우드'의 화려함을 지니고 있어요. 켄트 존스 감독님과 함께 고전 할리우드 전설들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죠.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연구하고, 영화 '상하이 익스프레스', '카바레'의 라이자 미넬리, 이사벨라 로셀리니 같은 강인한 여성들의 모습을 글로리아에게 주입했어요. 모든 제스처와 신체 동작을 과장했는데, 요즘 현대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이죠. 서구적인 배경 안에서 한국인으로서 그런 연기를 한다는 게 정말 짜릿했습니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이며 자신만의 결을 확장해온 그레타 리에게 이번 작품은 또 다른 방향을 증명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리얼리즘부터 액션, SF까지 장르를 넘나들어온 그는 '나의 사적인 예술가'에서 보다 상징적이고 스타일화된 글로리아를 통해, 지금 이 시대 예술가가 마주한 질문을 정면으로 끌어낸다.


"대본과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에 정말 끌렸어요. 글로리아는 제가 가진 많은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이거든요. 온갖 글로벌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는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고 부담 없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일깨워주는 인물이에요. 특히 기술, 인터넷, 소셜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떻게 우리만의 독특한 예술적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그의 관점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그레타 리가 바라본 켄트 존스 감독의 작업 방식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하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요구하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현장에서는 기본에 충실한 태도로 중심을 잡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정말 최고 중의 최고예요. 그분을 멋지게 만드는 건 의외로 아주 심플해요. 연기 스펙트럼은 정말 넓지만, 태도나 프로페셔널한 스타일은 아주 곧고 어찌 보면 고전적(정석적)인데 전 그게 참 좋았어요. 제시간에 오고, 대사를 다 외우고, 준비가 완벽하죠. 강인하면서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갈 때는 매우 민주적이고 부드러운 분입니다."


영화 후반, 뉴욕을 떠나겠다고 색스버거에게 전하는 글로리아의 표정은 이 인물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다. 웃음을 띠고 있지만 슬픔이 서려있는 미묘한 표정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글로리아라는 인물이 그레타 리의 얼굴로 완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장면에서 글로리아가 ‘나는 예술가고,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다’고 말하잖아요. 그 대사를 처음 읽었을 때 정말 강하게 와닿았어요. 그 감정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촬영되기도 했고,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담도 있었지만, 막상 연기할 때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흘러갔어요. 어떤 걸 ‘억지로 표현해야 한다’는 느낌보다는, 그 인물의 상태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집중했죠.”



그의 관심은 ‘완성된 인물’보다 변화의 과정에 놓인 사람에게 향한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캐릭터보다,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선택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바꿔가는 인물에 더 시선이 머문다는 설명이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정말 끌린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예상치 못한 비범한 상황에 놓이게 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면에서는 어떻게 '슈퍼휴먼'이 되어가는지를 살피는 게 좋아요. 이미 완벽한 캐릭터보다 이런 인물들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그레타 리가 배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유’다. 성별이나 나이, 인종에 따라 규정되는 기대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넓혀가는 데 의미를 둔다.


"항상 '자유'가 원동력이에요. 성별, 나이, 인종에 따른 기대치에 갇히고 싶지 않았거든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할 수 있다'는 꿈의 구현체라고 느껴요. 사람들에게 그런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그레타 리는 배우를 넘어 연출자로서의 첫걸음도 준비 중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 모니카 김의 소설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화를 구상하며, 자신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연출이 제게 중요한 이유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한 기회를 직접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어린 한국 소녀가 주인공인 프로젝트를 쓰고 있는데, 제 나이대의 배우들이 갈망할 만한 이야기를 쓰는 게 정말 보람차요. 저 같은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그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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