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등 지정학 리스크 상시화
공급망 의사결정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
AI 도입 늦으면 비용 경쟁력 20% 열세
자율 운항 선박 관련 이미지. AI 이미지
홍해 사태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되며 글로벌 공급망의 ‘평시’가 사라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반복되면서 해운·물류 기업들은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기르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비용 구조를 좌우하는 핵심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4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30년까지 대형 조직의 70% 가량이 AI 기반 공급망 예측 체계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 운송 계획 등 공급망 전반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으로 재편되면서 AI는 단순한 효율 도구를 넘어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변동성이 큰 해운·물류 업계에서는 예측 정확도가 곧 비용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만큼 AI 도입 여부 자체가 기업 간 격차를 좌우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는 AI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 수요 예측 정확도가 20~40% 개선되고 채찍 효과는 30~50% 감소하는 반면, 도입이 늦은 기업은 10~20% 수준의 구조적 비용 열위를 안게 된다고 분석했다.
국내 해운 기업들에서도 이미 ‘전면 도입’ 수준의 변화가 시작됐다. HMM은 HD현대의 자율 운항 전문 자회사 아비커스와 협력해 대형 선박 40척에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 컨트롤’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17척에 대한 설치를 마쳤으며, 연내 40척에 적용을 완료할 계획이다.
아비커스의 AI 시스템은 항로 설정과 속도 제어를 자동으로 수행하고, 기상 및 해상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최적 운항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이고 연료 소비를 최소화하는 등 운영 효율 개선 효과를 거두고 있다.
HMM은 지난 3월 아비커스가 진행하는 29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지분을 취득했다. 이를 계기로 자율 운항 시스템 도입 범위를 기존 40척에서 100척이 넘는 전 선단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대형 선사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포함한 전 선단에 자율 운항 시스템을 전면 적용하는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현대글로비스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초대형 자동차 운반선(PCTC) 6척에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시스템을 탑재했으며, 연내 1척을 추가해 총 7척을 대상으로 실증 운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7000대 이상의 차량을 운송하는 대형 선박에 해당 시스템을 적용한 것은 세계 최초 사례다.
또한 보유 선박 45척에는 스페이스X의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를 도입해 자율 운항의 핵심인 초고속 데이터 통신 환경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해상 사고나 기상 악화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육상과의 실시간 대응이 가능해졌으며, 선박 안전성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현대글로비스는 향후 대용량 데이터 송수신 기반을 바탕으로 자율 운항 고도화와 AI 기반 예측 정비 등 차세대 스마트 해운 기술 도입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처럼 AI가 해운·물류 산업 전반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기술 도입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GPT-3.5’ 이후 AI 도입 비용은 과거 대비 크게 낮아지며 ‘비용 장벽’이 사실상 사라진 단계에 진입했다. 과거에는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과 낮은 비용으로도 AI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트레드링스는 “‘AI를 비싸서 도입하기 어렵다’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도입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단계로 넘어왔다”며 “업계에서 AI는 공급망 계획과 의사결정을 바꾸는 흐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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