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담장 넘어 업종 경계 허문 '성과급 동기화'
노봉법 타고 하청까지 전이...노·사·주 전면전 비화
공급망 연쇄 마비·인재 유출 등 산업계 '3중고' 우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대한민국 산업을 지탱하는 두 축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거대한 성과급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개별 기업의 노사 갈등 수준을 넘어 실적의 과실을 둘러싼 ‘보상 전쟁’이 산업 생태계 전체의 근간을 흔드는 모양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정점에 달한 골든타임에 터져 나온 내부 잡음은 공급망 신뢰 하락과 인재 유출이라는 치명적인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28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발단은 반도체 업계에서 터져 나온 전무후무한 실적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 71.5%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달성하며 엔비디아의 지난해 4분기 기록(65%)마저 넘어섰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만 약 250조원에 달하자 SK하이닉스 노사는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지급하고 기존 상한선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단순 계산 시 임직원(약 3만5000명) 1인당 평균 7억원에 달하는 ‘성과급 잔치’가 예고된 셈이다.
이는 곧장 산업계 전반의 보상 기준 상향 평준화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노조는 연봉의 50%인 성과급 상한선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재원으로 명문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300조원) 기준 약 45조원 규모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현대차 노조 역시 지난해 순이익의 30% 지급안을 내놨다. 지난해 순이익(약 10조3648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3조원 이상 규모다. LG유플러스(영업이익의 30% 배분)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성과급 상한 폐지) 등 타 업종 노조도 가세했다. 수익 구조와 생산성이 전혀 다른 업종들이 “옆 동네만큼 달라”고 외치는 보상 동기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 대기업발 고액 성과급 요구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며 투쟁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 시행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하청 노조가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을 상대로 직접 이익 배분을 요구할 법적 통로가 열리면서 ‘원청 수익의 기반은 우리의 부품과 노동’이라는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24일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진행했다.ⓒ삼성전자 초기업노조
HD현대중공업 노조의 경우 정년퇴직한 하청 노동자들의 성과급 지급 문제로 국가인권위 진정과 고용부 고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똑같은 배를 만들고 똑같은 위험을 감수하는데 왜 성과급 지급일 변경으로 퇴직자가 소외되어야 하느냐”며 조선업의 고질적인 이중구조가 숙련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노사 전선이 원·하청을 아우르는 공급망 전체로 확대되면서 산업 생태계의 분열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산업 현장의 긴장감은 ‘연쇄 마비’ 우려로도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선도 기업의 라인이 멈춰 서면, 반도체의 24시간 연속 공정과 자동차의 적기 생산 방식(JIT) 특성상 이들과 연결된 수천 개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사는 즉각적인 가동 중단 위기에 처한다. 여기에 ‘개미 주주’들까지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과도한 요구를 멈추라”며 이재용 회장 자택 앞 맞불 집회를 예고하는 등 사태는 노·사·주 간의 전례 없는 사회적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다.
학계의 경고도 매섭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이 리스크 분산을 위해 (대만의) TSMC 등 대체 공급선 검토에 나설 수 있다. 공정 검증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한 번 이탈한 고객은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며 생산 중단이라는 ‘보이는 비용’보다 신뢰 약화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더 치명적이라고 짚었다.
해외 주요 언론도 한국발 노사 갈등이 글로벌 IT 공급망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TSMC가 AI 반도체 경쟁에 사활을 걸고 달아나는 시점에 터진 내부 갈등은 글로벌 고객사의 신뢰 하락과 핵심 인재 유출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로이터는 “삼성의 생산 차질이 AI 데이터 센터부터 스마트폰, 자동차 등 메모리 반도체를 사용하는 전방 산업군의 공급 병목 현상을 확신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이번 사태가 “국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고, 닛케이 아시아는 “삼성의 노사 분쟁이 장기적인 시장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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