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꿀만 빠는 동맹은 없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1.13 08:30  수정 2026.01.13 11:27

영국 프랑스, 유엔에서 미국을 지지하다

일본 전국시대, 기요스 동맹의 탄생(1562)

미국과 한국, 누가 빚졌나?

고립된 미국, 한국의 응원을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25년 11월 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 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등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영국 프랑스, 유엔에서 미국을 지지하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후 마두로 대통령을 연행한 사태를 놓고 지난 5일 UN 안전보장 이사회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미·영·불·중·러, 5대 상임이사국 사이에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중국과 러시아는 ‘주권 국가 침략’이라며 미국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 불법선거로 당선된 가짜 대통령”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미국이 주권 국가인 베네수엘라를 침략한 것도 사실이고, 마두로가 불법 선거로 당선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양 쪽이 자기들 유리한 사실만 들어 공방을 펼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현상 유지(status quo)’라는 국제법 대원칙을 모를 리 없다. “불법 선거”라는 미국의 주장이 핑계일 뿐이라는 거, 미국의 속내는 베네수엘라 석유라는 거, 영국과 프랑스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UN 공개무대에서 미국을 공개 지지했다. 심지어 미국이 같은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 영토인 그린란드에 군침을 흘리는데도. 그게 동맹이다. 다소 명분이 부족해도 욕을 먹는 한 있어도 일단 동맹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게 동맹이다.

일본 전국시대, 기요스 동맹의 탄생(1562)

일본 전국시대 말기 아직은 뚜렷한 패자가 나타나기 전, 합종연횡은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애송이 동맹이 등장했다. 미카와의 울보와 오와리의 악동 동맹, 기요스 동맹(1562)이었다. 2년 전, 오다 노부나가는 겨우 3천도 못 되는 적은 병력을 거느리고, 이마가와 요시모토군 2만 5천 군의 본진을 급습해 요시모토의 목을 베었다. 덕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마가와의 볼모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오다는 다른 강자도 많았지만, 어리고 힘없고 가난한 미카와의 이에야스를 동맹으로 선택했다. 당시 강자는 다케다 신겐(가이), 우에스기 겐신(레치고), 호죠 우지야스(사카미), 아사쿠라 요시카게(에치젠), 모리 모토나리(주고쿠), 오토모 소린(큐슈) 등이었다. 이에야스는 다른 선택할 입장도 아니었지만, 오다의 제안이 고마워 바로 손을 잡았다. 도쿠가와는 오다와 연합해 이마가와 가문을 시작으로 다케다, 아사쿠라 등을 차례로 격파하고 서서히 국력을 키워나갔다.

기요스 동맹 20년, 일본을 통일하다

오다와의 기요스 동맹 20년이 장미꽃으로만 덮여있지는 않았다. 때로는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이에야스는 피눈물을 쏟고 피도 많이 뿌렸다. 그 유명한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이에야스의 1번 가신이라 할 사카이 다다쓰구가 별동대 3천을 이끌고 도비가스야마 보루를 공격해 다케다군의 퇴로를 끊었다. 도쿠가와 가문은 크고 어려운 전투마다 선봉 돌격대를 맡아 효장과 정예병을 잃었다. 이에야스는 오다의 명령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결별하고 장남 노부야스는 할복해야 했다. 노부야스 사건(1579) 당시 일부 청년 가신들은 “노부나가와 일전을 벌이자”며 강경론을 폈으나, 이에야스는 냉정하게 부인과 아들을 희생하고 동맹을 유지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20년 동맹을 유지하면서 전투력을 쌓고 영토를 넓혔고 실력을 쌓았다.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전국 시대, 충실한 동맹으로 처신하는 동안 예상치 못하게 오다 노부나가가 핵심 가신 아케지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죽었다.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잠시 양보하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은 도쿠가와 막부를 세워 300년 권력을 누렸다.

영주들의 선택과 도쿠가와 막부

토요토미 히데요시 급사 후 영주들에게 또 동맹의 선택이 강요됐다. 일본 섬의 자웅을 겨루는 세키가하라 전투, 도쿠가와 동맹의 동군과 토요토미 아들의 서군이 맞붙었다. 토요토미군의 총사령관은 토요토미의 핵심 참모 이시다 미쓰나리였다. 양쪽 병력은 최대 20만. 전투는 치열했고 막판까지 눈치 보는 영주도 있었다. 병력은 서군 4만쯤 많았으나, 경험많고 노련한 이에야스가 이끈 동군이 승리했다. 동맹 선택의 결과는 냉혹했다. 승자 동맹은 영토가 크게 늘었고, 패자 동맹에 선 영주는 죽음이었다. 영주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개인과 번국의 실력보다 동맹이었다.


이에야스의 직할령이 250만석에서 400만석으로 이에야스의 4남도 10만 석에서 52만석으로 늘었다. 구로다 나가마사는 18만석에서 52만석으로 가토 키요마사는 25만에서 52만으로 영지가 늘었다. 서군의 핵심 이시다 미쓰나리(19만석)과 고니시 유키나가(20만석)은 처형 폐문됐고, 우키타 히데이에는 57만석 영지를 전부 몰수당하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모리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은 각 120만석에서 1/4 수준인 30만석 수준으로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그게 도쿠가와 막부 체제의 시작이었다. 한 순간의 동맹 선택이 300년 자손의 운명을 결정했다.

미국과 한국, 누가 빚졌나?

100여 년 전 태프트 카쓰라 조약으로 조선을 일본 제국주의의 아가리에 넣어준 나라는 씨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의 미국이었다.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은 얄타 회담에서 한반도 분단의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집안 동생뻘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다.(프랭클린의 부인 엘리노어가 시어도어의 조카라, 부인으로는 숙질 관계가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미국에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80년 전 사악한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로부터 조선을 해방시킨 나라 역시 트루만 대통령 시절의 미국이었다. 6.25 남침에서 한국을 구한 나라도 미국이었고, 중공군의 불법 침략에서 한국을 구한 나라도 미국이었다. 전쟁 후 굶어죽을 수도 있었던 극빈국 한국을 구제해준 나라도 미국이었고, 월남전에 참전해 총포류를 싸게 도입하고, 군수품을 공급해 경제 회생의 전기를 제공한 나라도 미국이다. 청년들이 선진 기술과 학문을 배워와 오늘의 반도체 대한민국을 건설한 나라도 미국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대한민국은 미국에 빚진 게 많다.

고립된 미국, 한국의 응원을 기대한다

한국과 미국, 동맹의 역사는 짧다. 미국에 원망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0년 남짓한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은 미국에 빚진 것이 너무 많다. 곰곰이 셈해 보면 우리가 빚진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국에 언젠가는 빚을 갚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닐까? 미국이 고립됐을 때, 비록 그 고립이 미국 스스로 선택한 고립일지라도 빚진 게 많은 한국은 미국을 응원해야 한다. 단 꿀만 빠는 동맹 관계는 없다.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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