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지시' 논란 속 수사지휘권 공방
野 "李만큼은 이럴 때 인권침해 언급해야"
"정쟁 말라"…與, 강압수사엔 거리두기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에서 불거진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칼을 빼들었다. 2년여 동안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자 "성역 없는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특정 검찰·경찰 인사에게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더욱이 특검 조사를 받던 양평군 공무원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선 침묵하자, 야권에선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 수사 지시가 적절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 2023년 1월 윤석열 정부 당시 불거졌으며, 대통령실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무마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대검은 지난 8월 임은정 검사장이 부임한 서울동부지검이 사건을 직접 지휘하도록 했지만, 지지부진하자 이 대통령이 '엄중 수사'를 지시한 상황이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외압을 행사했다고 의혹이 불거진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여당은 '제2의 채상병 사건'이라고 부르며 공세를 펼쳐왔다.
지난 2023년 1월 인천세관 공무원이 말레이시아 국적 피의자들의 필로폰 밀수에 연루됐다는 진술이 나왔고, 당시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을 이끌던 백해룡 전 영등포서 형사과장(경정)은 김찬수 총경(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부터 중간 수사 언론 브리핑 연기를 지시받았다고 주장한다. 김 총경이 '용산에서 사건 내용을 알고 있고, 심각하게 보고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사건을 의도적으로 무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독자적으로 엄정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배경엔 윤석열 정부의 의혹을 청산하기 위한 의지라고 보고 있다. 현재 윤 전 대통령 내외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상병)이 가동 중이다. 이 대통령은 여기에 마약수사 외압 의혹도 신속하게 해결해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휘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더욱이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한 것이 아닌, 임 지검장과 백 경정한테 각각 수사검사 추가와 검경 합동수사팀 파견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제8조에 근거해 구체적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렸을 뿐 아니라, 대상이 검찰총장이 아닌 특정 검사장이라는 점에서 위법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실 외압'을 주장하는 백 경정을 수사팀으로 파견하는 것도 수사 공정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권에선 이 대통령의 수사 지휘가 위법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절차를 건너뛰고 특정인에게 수사를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명백한 수사 개입이자, 이 대통령 의중대로 수사가 흘러가게 만들겠다는 뜻"이라며 "대통령이 특정 사건을 지목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순간,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이미 훼손되며 '하명 수사'는 국민 눈에는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수사'로만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수사 기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있어야 하는데,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누가 수사를 공정하다고 믿겠느냐"면서 "대통령이 행정부를 총괄하는 것은 맞지만, 수사에 대해선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헌법상 제도적 장치가 있음에도 모두 무력화시키는 것과 다름없으며, 특정인에게 수사를 지시하는 것도 일종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권에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사실상 '열심히 수사하라'라는 추상적 지휘일 뿐, 수사 개시나 압수수색 등 구체적인 지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정기획위원회 정치행정분과 전문위원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구체적 수사 지휘는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해야 하지만 수사 부서에 누구를 배치할지 같은 일반적 지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열심히 수사하라'와 같은 추상적 지휘는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불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마약 외압 의혹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지시는 '양평군 공무원 사망' 사건과 연결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은 경기 양평군 공무원 A씨가 강압적인 조사로 사망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지시를 내렸다는 점에서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야권은 이번 양평 공무원 사망 사건을 들어 이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특검을 통제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야권은 특검 임명권자가 이 대통령인 만큼 사망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은 특검이 독립 기구인 탓에 이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마약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지시를 내린 탓에 야권에 공세 명분을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사실상 선택적 분노와 선택적 슬픔을 정치 지형에 따라 나누고 있는데, 사람의 생명은 모두 평등한 것 아니냐"라면서 "이재명 정부는 정치 이념에 따라 사건을 선택하고 있는데, 양평 공무원 사건은 강압 수사라고 봐야 하며 진상 규명을 위해 끝까지 물어 늘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도 "이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에 대해 수사 남용이 있었다고 주장한 만큼, 이럴 때일수록 인권 침해와 절차 위반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며 "논란이 터지니까 입을 닫고 선택적 정의만 내세우니까 부적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김건희 특검에 대한 특검 필요성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양평 공무원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민중기 특검에 대한 폭력 수사 특검법'을 당론으로 추진해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특검 수사에 대한 동력을 떨어뜨리고, 이 대통령의 '내란 청산' 명분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여당은 "고인의 죽음을 정쟁화하며 모욕하지 말라"고 반발하고 있다. 다만 특검의 강압 수사 논란에 대해선 무리한 수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 특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져 자칫 정부여당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더 인터뷰'에서 "특검은 과거 윤석열 정치검찰처럼 표적을 정해줘 놓고 표적 수사를 하거나 정적을 없애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하는 수사가 아니다"라면서 "진실만 밝혀내면 되기 때문에 특검이 무리한 수사를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정부 기관도 아니고 대통령이 지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검법에 따라 특정 대상 사건에 대해 수사하며 결론을 내린다"며 "(특검은 국회로 불러) 우리가 물어보거나 간섭할 수 없는 기관"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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