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주민, 서독에 눈·귀 열었다
서독 "기본조약, '재통일명제' 정치적 목적에 반하지 않아"
통일을 원하는 남북, 아예 가면을 벗을 때 됐나?
10월 3일 개천절, 35년 전 독일에도 하늘이 새로 열렸다. 통일이고, 이젠 일상이다.
한데 독일 통일에 대한 좌파 정당·정치인의 변검 행태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변검이란 중국 전통 경극에서 배우가 쓴 가면을 순식간에 휙휙 바꾸는 기술이다. 잘 연기하는 이를 ‘변검대사(大師)’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른바 ‘햇볕정책’은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신동방정책(Neue Ostpolitik)’에 입각해 추진했던 대동독 정책, 즉 ‘독일정책(Deutschlandpolitik)’의 아류(亞流)다.
사회주의·공산권과의 단절·대립에 기반했던 ‘동방정책(Ostpolitik)’이 지속되면, 민족적 이질성은 커지고 동독 주민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통일은 중·장기적 과제로 설정하고 우선 접촉·교류·협력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지키면서 동독 주민의 삶·인권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그들의 변화를 통해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 정책이다.
그렇게 통일을 이끈 독일 사례를 거론하고 정당화하면서 추진했던 햇볕정책, 서독이 어떻게 접촉·교류·협력을 추진했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가에는 눈을 감았다. 서독은 방법상 현금 지불을 최대한 삼갔고, 목적상 동독 주민의 삶·인권을 개선했고, 통일을 이끌었다.
변검 좌파 정당·정치인에게 묻는다. 북한과 접촉·교류·협력의 중요성을 독일 사례를 들며 그렇게 외치는데 햇볕정책 이름 아래 북한에 보낸, 파악될 수조차 없는 현금으로 북한 주민의 삶·인권이 좋아졌는가, 북한 독재자들만 쳐다보았고 그들과의 ‘쇼’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았는가.
좌파 변검 정당·정치인의 더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이용한 독일 통일을 거부하는 데 있다. 접촉·교류·협력에 의해 동독 주민이 서독에 눈·귀를 열었고, 자발적 판단·결단·행동으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1990년 3월 18일 동독 최초의 비밀·자유선거에서 서독과의 조속한 통일에 대한 민족자결권 표출, 서독과의 협상을 통한 10월 3일 통일을 ‘평화통일’이 아니라 ‘흡수통일’이라며 배제한다.
동독 주민이 스스로, 헌법에 명백히 규정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 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g)’의 서독 체제로 편입해 독일 민족이 하나가 된 것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평화통일 아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독일 사례와 접촉·교류·협력을 주장하던 좌파 정당·정치인은 문재인 때 본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독일 통일은 동독이란 체제가 사라지고 하나가 된 흡수통일이기에 우리 통일 모델이 아니라면서, 독일 통일이 아니라 ‘유럽연합EU)’, ’독립국가연합(CIS)’ 등을 연구했다.
서독이 의도적으로 동독을 흡수하려 했다면,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을 안겨 찢어놓은 독일이 하나가 되는데, 어느 국가 어느 국민이 받아들였겠는가.
흡수통일이라 하면 자유·민주주의·인권·복지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궐기했던 동독 주민의 피와 땀은 무엇이란 말인가.
변검 정당·정치인이 아니라면, 독일 통일이 흡수통일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인가에 확실한 얼굴을 보여야 한다.
그러던 변검 정당·정치인이 이젠 아예 통일이 아니라 두 국가 공존을 말한다.
1945년 분단 이후 소련은 독일 전체의 사회주의·공산화를 노렸으나 여의치 않자 1950년 초부터 동서독 ‘2국가론’ 지령을 동독 지도부에 내렸다. 1972년 서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한 이듬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직후부터 동독은 서독과는 민족도 다르다며 ‘2민족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남북기본합의서’(1991)에 해당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서독은 부속문서에 “이 ‘기본조약’은 서독의 ‘기본법’(헌법) 전문에서 명시된 ‘재통일명제(모든 독일 주민은 자유로운 민족자결로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완성할 것이 요청된다)’의 정치적 목적에 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동독이 2국가·2민족을 주장해도, 1970년대 말까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 수교하고 1980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해도, 서독은 동독을 개별적 주권 국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치적 실체로서만 인정했다.
헌법상 한 민족인 동독 주민의 삶·인권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고, 서독으로 오면 자동으로 서독 국민이 되었다. “독일 민족은 하나고 독일 국민도 하나다”라는 원칙이 통일될 때까지 서독 정부와 서독 주민에 내재했다.
남과 북이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유엔에 따로 가입한 별개의 두 국가라 주장하는 변검 정당·정치인, 특히 정동영·정세현 현·전직 통일부 장관은 독일 사례를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그냥 “통일 하지 말자”고 해 ‘분단 부역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정동영은 독일이 ‘통일부’가 아니라 ‘내독관계부’로 했기 때문에 통일이 되었다, 우리는 통일부를 고수해 통일이 안 된다고 궤변을 풀었다. 한때 독일 통일 현장인 베를린에서 연구까지 했다는데 독일 통일을 연구했는가 아니면 어떻게 이용할까에 골몰했었나.
이제 변검이 아니라 아예 가면을 벗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과연 통일을 원하는가.
남북이 별개의 두 국가라면, 통일부를 ‘남북협력부’나 뭐라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는 것이 맞는다. 일반적 국제관계상 타국을 대하듯 북한을 외교부 등에서 대하면 된다.
대한민국헌법적 통일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통일부의 존재 이유가 없다. 정책상의 차이가 아니라 부처 목적이 사장되는 상황에서도 찍소리 않는 통일부 공무원을 보노라면, 통일부 폐지가 옳다.
변검의 이재명 대통령·정부가 ‘남북이 별개의 국가’, ‘평화공존’, ‘흡수통일 반대’ 등 뭐라 해도 김정은은 비웃는다. 남쪽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2민족·2국가’, ‘가장 적대적인 교전 상대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김정은에게 대한민국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 사례를 목적에 따라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왜곡하여 딴소리하는 좌파 정당·정치인은 변검 연기를 기막히게 잘하는 ‘변검대사’다.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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