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데일리안 인터뷰
"국민의힘, 계속 '보수정치' 대표정당으로 남을 순 없어"
"보수 정치, 수술이 필요한 시점…병이 있다면 암을 도려내야"
"나아갈 방향은 간단…잘하기보단 '잘못하지 않는 것'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 조기대선 패배 이후 치러진 국민의힘 8·22 전당대회는 보수 진영의 향배를 가늠할 시험대였다. 그러나 전당대회 구도는 강성파와 혁신파로 갈라지며 당 내부와 지지층의 갈등은 오히려 격화됐고, 유튜버 전한길 씨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의 길이 아닌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다수의 라디오 방송과 좌우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해 온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현 국민의힘 상황을 '양파'에 빗댔다. 양파 껍질이 차례차례 벗겨지듯 중도 성향이 이탈하고, 결국 강성 지지층만 남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취재 경험을 토대로 정치컨설턴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온 그는 우리 정치 전반을 냉철하고 상식적으로 바라보는 분석가로 평가 받는다.
윤 실장은 "국민의힘이 언제까지 보수정치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는 냉정한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사회 전반은 북한·중국 문제나 젠더 갈등 등 주요 현안에서 보수화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마저 스스로를 '중도보수'라 규정하는 상황이지만, 정작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지금의 보수정당은 '더 이상 잘못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정권을 향한 과잉 충성이나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기본적 정책 역량과 실력을 회복하는 것만이 새로운 보수의 언어와 태도를 정립하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윤 실장은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고 기득권과 약자의 균형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보수가 다시 세워야 할 패러다임"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탄핵 국면, 조기대선을 거치면서 정치 지형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도 여전히 '보수 대 진보'라는 구도가 유효하다고 보시나.
"아주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는 보수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포인트를 보면 북한·중국·일본에 대한 인식, 기업에 대한 태도, 젠더 갈등 등이 있다.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사회적 의제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는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젠더 같은 주제가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대주주 요건이 10억이냐 50억이냐 같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 의제 자체가 바뀐 것이다.
한국의 국가 위상도 많이 올라갔다. 나는 70년대생인데, 지금 한국 국민이라는 것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상위 10%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정부 시절 유럽연합(EU)·일본·한국이 하나의 블록처럼 묶여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걸 보여준다. 국가가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보수화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도 소득 격차, 계층 격차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지켜야 할 기득권이 많아졌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는 분명 보수화 흐름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을 '중도보수'라고 말하는 것도 단순한 레토릭(Rhetoric)이 아니다. 진보 의제를 세 가지로 꼽으면 남북관계·노동·젠더다. 그런데 이 세 요소가 과거처럼 쟁취해야 할 과제가 아니게 됐다. 물론 노란봉투법 같은 이슈도 있지만, 사회 전체로는 이미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보수화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보수층을 대표해야 할 국민의힘이 이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 때도, 이번 전당대회 때도 김문수 후보는 정부·여당을 향해 '사회주의 체제를 막겠다'고 했고, 장동혁 후보는 '이재명 정부 종식'을 외쳤다. 그런데 이런 건 지금 사회의 보수 아젠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결국 사회는 보수화되는데, 정작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으로서의 대표성을 살리지 못하는 괴리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보수의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시나. 단순한 지지율 하락을 넘어 구조적 위기로 볼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보수 자체는 위기가 아니다. 보수는 사회적 현상이고, 늘 존재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는 개념이다. 위기인 건 정치세력으로서의 보수다. 지금은 그 정치적 공간에 이재명 대통령 같은 인물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의 위기와 보수 정치세력의 위기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보수란 건 원래 추상적인 것이고, 개별 집단의 집합체다.
그러나 정당으로서 보수를 대표하는 세력, 즉 보수 정치세력은 확실히 위기다. 국민의힘은 의석도 갖고 있고, 정당 보조금 등 막대한 자원을 받고 있다. 대선 당시 보조금과 비용 보전만 합쳐도 700억 원 수준이다. 정치자금만 해도 100억이 넘는다. 이렇게 자원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더 많은 자원과 권력을 확보하기는커녕, 기존 기반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보수라는 개념이 위기냐 아니냐가 아니라, 보수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하는 정치세력이 실력과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국민의힘 8·22 전당대회 결선에 전한길 씨를 적극 옹호한 장동혁 대표가 당선됐다. 이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시나.
"내가 자주 쓰는 '소금물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이 증발하면 같은 양이라도 짠맛만 남듯,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중도와 온건층이 빠져나가고 강성 지지층만 남는다. 당 전체 파이가 줄어들수록 내 지분율이 커지는 구조다.
정상적이라면 지지율이 올라야 지도부에도 유리한데, 지금은 지지율 하락이 유리한 메커니즘으로 굴러간다. 기업으로 치면 회사가 잘 돼야 승진 기회도 생기고 월급도 오르는 게 정상인데, 잘나가는 직원이 빠져야 내가 승진하는 구조가 돼버린 셈이다. 국민의힘이 지금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보수 정치가 다시 일어설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
"보수는 언제든 다시 올라올 수 있다. 보수라는 건 그냥 존재하는 개념이다. 보수가 존재하면, 언젠가는 보수 정치를 대변하는 세력도 다시 부상하게 돼 있다. 정치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바닥을 치면 결국 다시 올라오는 구조다. 지금처럼 계속 실책을 반복하면 그 시기가 점점 늦어질 뿐이다.
또 하나 보수 정치의 미래가 꼭 지금의 '국민의힘'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국민의힘이 천년 만년 보수를 대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새로운 정치 세력, 다른 정치 언어, 다른 리더십을 가진 주체가 등장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조건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단순하다. 병이 있으면 암을 도려내야 하고, 기업에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지금의 보수 정치에도 그런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게 부채든, 암덩어리든, 안고 가선 안 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보수에게 요구하는 정신은 무엇인가. 이 시대에 맞는 보수의 언어와 태도, 그리고 새롭게 정립돼야 할 패러다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결국 본질은 실력이다. 이재명 정부를 비판할 지점은 다양하게 있는데, 실력이 없으니 정책 대안은 못 내놓고 '사회주의는 안 된다'는 식의 선언만 한다.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은 충분히 많지만 그걸 비판할 실력이 없으니 '사회주의는 안 된다' '총통이다' 같은 극단적인 수사만 나온다는 것이다.
보수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간단하다. 뭘 잘하려고 하기보다, 일단 잘못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야당이 경제에 대해 완결된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실수를 줄여야 한다.
지금은 그것조차 안 되고 있다.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 잘못된 메시지, 잘못된 사람을 고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지금까지 8개월 넘게 보수와 진보, 언론 할 것 없이 사회의 여러 주체들이 국민의힘에 주문한 메시지는 동일했다. 온도 차이는 있어도, 같은 방향의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도 그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있다. 그건 실력 부족이자 태도의 문제다.
보수는 원래 주류 세력·기득권·자산가·기업인·전문직 같은 계층을 대표하는 이념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안정돼야 하고, 그러려면 저소득층과 노동계층의 안정도 함께 도모돼야 한다. 이게 본래의 보수다. 지금의 보수 정치세력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이후, 보수 정치세력은 오히려 사회적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건 주로 저소득층·노년층이고, 그들이 내세우는 건 '좌파는 안 된다' '중국에 나라를 빼앗긴다' '부정선거다' 같은 이데올로기적 주장뿐이다.
정작 사회 안정과 책임을 이야기하는 보수의 언어는 사라지고 있다. 전한길 씨 같은 인물이 그런 흐름을 대표한다. 영향력은 있지만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 지도부 요직에 들어가봤자 견제도 받고 실무도 해야 하니,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한 위치일 것이다. 유튜버로 남는 게 자기한테는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강해지는 방식도 잘못됐다는 점이다. 지지층을 확장해서 영향력이 커지는 게 아니라, 있는 걸 더 줄여가면서 자기 입지를 높이는 방식이다. 이번 전당대회 직후 장동혁 대표의 일성도 비슷했다. 일반적인 정치 문법이라면 '여론을 신경 쓰겠다' '비판도 귀 기울이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어야 하는데, 오히려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야 한다' '방해되는 건 안 된다'는 식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우파 시민들'이 누구인지, 결국 전한길 같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거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자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오세훈·박형준·유정복 같은 중도 외연 확장력을 가진 인사들이 당에 기대기가 어려워질 거다. 지방선거에서 당이 어느 정도만 받쳐줘도 본인의 경쟁력으로 붙어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사들이 직접 움직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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