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지난달 21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자 국회의사당역을 통해 국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기자를 하면서 지켜왔던 원칙 중 하나는 반드시 소속과 직책을 드러내고 취재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기자증 혹은 국회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고, 때로는 명패를 가슴에 패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적으로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외적으로 떳떳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개인적 노력이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의 의미도 있다. 취재 중이며 기사화 예정이니 혹시 모를 실언이나 비상식적 행동을 주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시민들까지 주의를 기울이며 발언에 신중함을 견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대한민국의 높은 국민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원칙이 흔들린 것은 2017년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였다. 성난 군중이 표출하는 적개심의 대상에는 언론도 있었고, 폭행으로 이어진 사례도 없지 않았다. 태극기 집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를 향해 철제 사다리를 내리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촛불집회를 현장에서 취재하던 한 후배 기자는 "노트북에 부착돼 있던 회사 로고부터 뗐다"고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후에도 감정이 격해진 군중에 의한 크고 작은 피해는 꽤 있었다. 지난 대선 때만 하더라도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취재했던 기자가 지지층으로부터 물벼락을 맞거나 응원 도구로 가격 당하는 일이 있었다. 군중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아예 기자임을 숨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최근 이재명 대표의 단식 국면 때에는 지지자들이 자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이 대표 단식에 동조 분노해 흉기를 휘둘러 경찰이 부상을 당했고, 체포동의안 가결 때에는 화가 난 한 집회 참가자가 경찰을 폭행하기도 했다. 더 큰 소요 사태로 이어지지 않고 그나마 이 정도로 마무리된 게 다행일 정도였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운동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로 추정되는 이가 국민의힘 선거운동원을 우산으로 가격하는 일도 있었다.
원인은 결국 정치다. 물론 정치의 본령은 싸움이 맞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국민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대의해서, 정책과 명분을 가지고 평화적으로 싸워야 한다. 지금처럼 일부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 혹은 생존을 위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역으로 지지층을 앞세우는 일은 단언컨대 정치도 아니고 민주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들은 비창조적·비생산적 흥분상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대중 정치인의 '생산성 없는' 혼자 분출했다가 사라지는 '감정 과잉'이 얼마나 대중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경계한 대목이다. 자신의 과격한 발언과 흥분이 타인에게 어떠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이 국민에게 남기는 것은 깊은 상흔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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