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은 끝났다"…벼랑 끝에 선 거장들의 외침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10.03 11:06  수정 2023.10.03 20:57

'플라워 킬링 문'·'거미집', 칸 국제영화제서 기립 박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 산업은 끝났다. 내가 속해 있던 업계는 거의 50년 전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그 동안 꾸준히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며, 테마 파크에 가깝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그 때마다 마블 영화를 모욕한다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이 거장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저 자신이 영화라고 생각하는 개인의 취향과 예술적 기질을 담은 작품으로 생각을 보여줄 뿐이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겪어온 영화는 인간의 복잡성과 비이성적인 면모, 인간 군상과 연관된 것들을 미학적, 감정적, 정신적으로 일깨우는 매체였다. 영화가 인생을 해석하는 표현은 보는 이들의 자아 성찰과 교훈으로 직결돼 왔다.


영화 산업이 끝났다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선언한 이유는 모든 작품이 시장 조사와 테스트 상영, 수정을 거듭해 많은 관객에게 소비되도록 가공되는 현상 때문이다. 그는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스튜디오가 더 이상 많은 예산으로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목소리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블록버스터와 그 외의 영화들로 양극화 된 현상은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 되어 가고 있다. 영화 배급 패러다임은 프랜차이즈 위주에서 이제 스트리밍이 제일 큰 규모의 배급 방식이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논리로 소위 말해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이미 관객의 선택권은 제한된 상태에서 공장에서 찍어낸 영화들만 나온다면, 다양성은 더 희미해질 수 밖에 없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연출자의 의도는 거세된 채,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공산품 형식의 제작 방식을 향한 일갈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이 같은 생각은 신작 '플라워 킬링 문'의 개봉을 앞두고 있어 더욱 조명 받고 있다. 애플TV 플러스가 제작한 극장 상영 영화로 제작비는 약 2억 달러(한화 약 2641억 원)로 알려졌다. 극장 상영 영화에 연간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애플TV 플러스의 첫 극장 상영 영화인 만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아낌 없는 투자와 독립성을 보장했다고 전해졌다. 숏폼 콘텐츠가 대세가 된 현재 206분이라는 러닝타임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데이비드 그랜 작가의 논픽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을 원작으로 하며, 1920년대 오클라호마로,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사건과 이를 수사하는 FBI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 영화는 혐오스럽고 잔인한 시대를 날카롭게 재구성해, 인류의 가장 부패한 곳으로 깊숙이 카메라를 가져간다.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까지 총 5편의 작품을 함께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첫 공개된 후, 호평 세례를 받으며 작품성은 이미 입증됐다. 개봉도 하지 않았지만 내년 오스카 작품상 후보로 일찌감치 언급되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자신이 가진 위치에서 모든 걸 동원해 작품으로 영화의 의미를 묻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지운 감독 역시 영화 산업 하락세 속에서 영화의 본질은 무엇이며 예술가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가야 하는지 신작 '거미집'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묘사하는 영화가, 과거에는 현대인에게 영향을 주는 강력한 매체였지만, 덧없이 쓰러져가는 것을 목격한 후, 기획된 영화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리는 영로, 김 감독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이를 통해 도출된 각자만의 해석은 자기혐오, 검열에 빠진 예술가들을 향한 격려이기도 하다.


김지운 감독은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억해 봤다. 영화에 대한 무기력함, 식었던 사랑, 혹은 열정 등을 잃지 말자는 응원이다. 내 바람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혹시나 이 영화로 인해 의문의 시선, 불안한 형태로 식은 마음이 회복된다면 최고의 성취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OTT 공개 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장이 아닌, OTT에서 공개하는 건 김지운 감독의 신념과 대치되는 방식이라 제외됐다.


영화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매체, 시스템이 번창할 때마다 거론돼 왔다.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이 번창할 당시, 멀티플렉스가 영화 산업을 좌지우지 할 때마다 창작자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극렬히 대립하고는 했다. 그리고 양측의 긴장 상태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지금은 긴장이 소멸됐고, 예술에 대한 관심은 꺼져 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시청각적 엔터테인먼트가 우위를 점한 지 오래다. 마틴 스코세이지, 김지운, '파벨만스'의 스티븐 스필버그, '바빌론'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 등은 균형이 무너진 현재, 거대 프랜차이즈가 창작자들의 정체성을 소외시키는 일을 우려해 자신의 자리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높이고, 작품을 내놓으며 본보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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