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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日 소부장 의존도, 다시 높여도 될까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3.20 10:51 수정 2023.03.20 12:18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외교 갈등 빚어지면 또다시 소부장 무기화 가능성 다분

독도 영유권 주장, 방사능 오염수, 군국주의화 등 갈등 요인 많아

국내 소부장 육성 정책 지속해 일본이 파고들 '약점' 없애야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내 등에 칼을 꽂은 자가 있다고 치자. 후일 서로 화해한들 그가 그 칼을 그대로 들고 있다면 앞으로는 그걸 과일 깎는 용도로만 쓸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과 양국 정상의 한일 관계 개선 선언을 계기로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아 가며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이라는 선물을 일본에 안긴 것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초라한 답례품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 낫긴 하다.


2019년 7월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돌입한 이후 우리 정부는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한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일본이 3년여간 한국으로 수출을 규제했던 3개 품목 중 불화수소의 일본산 의존도는 규제 이전인 2018년 41.9%에서 지난해 7.7%로 급감했지만, 같은 기간 포토레지스트는 93.2%에서 77.4%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불화폴리이미드의 일본산 의존도도 44.7%에서 33.3%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어차피 일정 부분 수입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일본이 규제를 풀어주는 게 우리 기업들로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앞으로 일본이 ‘국제교역질서를 준수하는 신뢰할 만한 교역 파트너’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는 착각에 빠져선 안 된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제시와 동시에 수출 규제를 해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3년여 전의 수출규제가 당시 양국의 외교 갈등 상황과 얽힌 보복조치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당시 수출규제가 한일 갈등 상황(한국 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무관하다고 잡아뗀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발언이 ‘대놓고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일본이 우리와 외교적 갈등이 벌어졌을 때 언제든 소부장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일본은 굳이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도 우리와 외교적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다분한 국가다. 독도 영유권 주장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화되는 추세고, 주변국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방사능 오염수 배출 문제에 대해서도 독단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회귀를 목표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일본의 군국주의화 움직임도 우리와의 충돌 여지를 높여준다. 우리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초계기로 위협 비행을 하고는 오히려 우리가 추적레이더를 조사했다고 우겨대는 식의 저열한 도발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상공인이 가업을 물려받다 못해 정치인마저 부친의 지역구를 세습하는 지독한 장인정신(?)으로 인해 극우 성향의 정권이 뒤집어질 가능성도 요원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건 국가간 관계건, 대립 상황에서는 아쉬운 구석이 있는 쪽이 불리하게 마련이다. 일본과 또다시 갈등이 빚어진다면 그들은 다시 소부장의 칼날을 우리 쪽으로 내밀 수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3년여 동안 우리 소부장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하에 규제 품목 국산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는 불화수소 대량생산능력 확보로 국산화율을 높였고, 동진쎄미켐은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해제했다고 해서 이런 노력이 멈춰져서는 안 된다. 굳이 대일(對日) 소부장 의존도를 다시 높여 그들에게 무기를 쥐어줄 이유는 없다. 비록 소부장 육성 정책이 이전 정부의 유산이라 해도 현 정부에서 계승하고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의 방일 직전 정부가 경기도 용인에 ‘메모리-파운드리-팹리스-소부장’이 집약된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고무적이다. 대기업 반도체 공장에서 소부장 제품의 개발·양산을 돕고, 판로를 확보해주며 탄탄한 공급망을 구축해 일본의 칼날이 파고들 틈이 없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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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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