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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유족·전장연이 저지한…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3.02.09 07:02 수정 2023.02.09 08:57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이태원 참사 유족과 '분향소' 문제로 골머리…지하철 탑승시위 전장연과도 '접점 평행선'

소모적이고 형식적인 대화로는 실마리 찾기 어려워…실권 가진 실무자들 직접 나서서 입장 차이 좁혀야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및 유족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전달한 분향소 강제 철거 2차 계고장을 거부하며 밟고 있다. ⓒ연합뉴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및 유족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전달한 분향소 강제 철거 2차 계고장을 거부하며 밟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기조를 약자들과의 동행으로 내세운 서울시가 약자들과의 갈등으로 '대략 난감' 처지에 빠졌다. 서울광장에 설치한 분향소 철거를 막으려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시민의 눈으로 본다면,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몸이 불편한 장애인 단체를 거대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모양새다.


이태원 참사는 이제야 벌어진 지 100일이 조금 지났다. 유가족들이 아픈 마음을 다잡기엔 짧은 시간이다. 유가족들은 잃어버린 가족들을 기억하고 추모해 달라며 얼마전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서울시가 분향소 설치가 불법이라며 강제 철거하겠다는 계고장을 들이밀었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관련 국정조사까지 여야 대립으로 정치화하고 있어 국민이나 유족들이나 답답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서울시까지 유가족들에게 계고장을 들이밀고 있으니 '서울시가 너무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계고장을 조각조각 찢어버린 유족의 마음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전장연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에야 전장연을 따가운 눈초리로 보는 시각이 늘었지만, 지하철 탑승 시위 초기까지만 해도 '오죽하면 저런 시위까지 벌이겠느냐'며 전장연 측의 편을 들어주는 시민들도 많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일 서울시청 간담회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의 간담회에서 박경석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일 서울시청 간담회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의 간담회에서 박경석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물론 이 모든 관점은 일반 시민으로서 생각했을 때의 일이다. 조금 더 문제를 넓게 살펴봐야 하는 기자의 눈으로 보면, 서울시만큼 입장이 난감한 곳도 없다.


서울시 입장에서 유족이 설치한 분향소는 규정된 절차를 무시한 불법 설치물이다. 유족들의 아픔은 공감하지만, 법으로 정해져 있는 만큼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는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유가족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한발 물러나 타협안을 제시했다. 유족 측이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세종로공원을 제외한 제3의 장소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방침이다. 행정대집행도 오는 15일 오후 1시까지로 시일을 미뤘다. 하지만 유족의 입장이 너무 강경해서 양측이 만족하는 합의안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전장연과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면담을 하며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면담에서는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만 확인됐고, 전장연은 오는 13일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전장연은 이미 법원에서 제시한 조정안도 2차례 모두 이의를 신청했다.


계고장을 찢어버리기까지 하며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유족. 시장과의 면담에서도 의견을 굽히지 않은 전장연. 서울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양측과의 갈등이 길어지며 결국 지켜보는 시민들마저도 피로감이 쌓여 서울시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다.


소모적이고 형식적인 대담만 이어지면 시민들의 피로만 늘어난다. 형식적인 대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실권을 가진 실무자들이 나서서 양측의 입장부터 좁히는 게 우선이다. 서울시의 난감한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사회적 갈등이 길어지면 애꿎은 시민들까지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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