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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45>] 술과 문학


입력 2022.10.05 14:01 수정 2022.10.04 12:46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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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술과 문학


“좋아.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럼 국가에서 금주나 절주 캠페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니?”


“그래주면 좋지. 국가에서 국민들 술 좀 적게 마시도록 해줄 능력만 된다면야 좋은 거지.”


“봉식아. 넌 음주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당연히 개인의 선택이지.”


“그런데 왜 국가를 끌어 들이냐. 그런 식으로 가다간 법으로 술을 금지시킨다든지 술 마셨다고 벌금을 매긴다든지 하겠다. 그리고 결국엔 국민은 없고 국가만 있는 전체주의로 흐를 거고.”


“지금도 술 마셨다고 벌금 매기잖아. 음주운전 말이야. 그건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술 마시면 운전하지 말라는 국민적 합의에 의한 거잖아. 그걸 통제라고 보면 안 되지.”


“난 그것도 못 마땅해. 음주운전이라고 다 같은 음주운전이 아냐. 정말 취해서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상태에 있는 자에게 제재를 가해야 되지, 몇 잔 안 마신 멀쩡한 사람에게도 무조건 벌금을 매기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술 마시고 걸어가는 음주보행도 단속하게 되고 결국 개인의 자유는 없어지는 거지.”


“과도한 상상이야. 국민들이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멍청이도 아니고.”


임봉식이 손사래를 치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문득 얼굴 표정에서 귀찮아하는 기색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이철백은 드디어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찮아하기 전에 떠나는 것은 박수칠 때 떠나는 것만큼이나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임봉식이 손을 뻗어 의례적인 만류를 했지만 이철백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빌라를 나섰다. 그늘 한 자락 보이지 않는 간선도로엔 폭염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철백은 지끈지끈한 골머리에 제대로 뙤약볕을 맞으며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이철백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임봉식을 찾아간 것은 자신의 주장에 동의를 해줄 원군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임봉식이 지껄이는 말은 차라리 김석규의 주장에 더 가까워 보였다. 술에 관한 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꺼리기는커녕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실상 개입을 못해서 그렇지 여건만 된다면 개입해주는 게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이철백은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혀서 혀를 만발이나 빼고는 최대한 큰소리로 끌끌 찼다.


정말 근시안적이야. 독재라는 게 처음부터 불쑥 튀어나오는 게 아냐. 시나브로, 알게 모르게 하나 둘 야금야금 자유를 갉아먹는 거야. 나치가 왔어. 처음엔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지. 독일 신학자 마틴 니묄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서 침묵했어. 다음엔 사회주의자를 가두었지. 마틴은 사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했어.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들을 덮쳤고. 이번에도 마틴은 노동조합원이 아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다음엔 유대인들에게 왔지. 마틴은 유대인이 아니라서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러자 이번엔 나치가 마틴에게 온 거야. 그때는 이미 마틴을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지.


“개인의 삶에 국가가 함부로 개입하도록 방치하면 안 돼. 국가란 호시탐탐 개인의 자유를 노리고 있다는 걸 간과하면 안 돼.”


이철백은 아직 영업 시작 전인 블랙&화이트에서 방선희를 앞에 앉히고 맥주를 마시며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방선희는 한참을 듣기만 하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철백이 니가 알다시피 내가 술장사를 많이 해봤잖아. 그래서 술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지. 네 생각을 부정하는 건 아닌데 나도 국가가 술을 좀 통제했으면 좋겠어.”


이철백이 뜻밖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방선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술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정말 젊잖게 선비처럼 술을 마시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개처럼 망나니처럼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 나 역시 술주정뱅이한테 걸려 인생 조졌고.”


방선희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맥주잔을 비웠다. 이철백은 거품이 넘치도록 방선희의 잔에 맥주를 채워주었다.


“술을 잘못 배워서 그런 거라면 학교에서부터 성교육 시키듯 음주교육을 시켜야 하고 처벌이 약한 게 원인이라면 더 세게 처벌해야지. 알코올중독이 된 가장 때문에 가정에서 학대받고 폭행당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방선희의 눈가에 촉촉이 물기가 어리는가 싶더니 이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철백은 반론으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을 언급하려다가 방선희의 눈물을 보고는 잠자코 맥주잔만 기울였다. 물론 방선희의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이철백이 보기에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특수한 사정을 보편적인 것으로 둔갑시키는 일반화의 오류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윽고 방선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는 네가 술장사하는 게 모순이다, 모순.”


이철백이 자작으로 잔을 채우며 말했다.


“술을 무조건 통제하자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맞춤형 통제를 하자는 거야. 술은 이슬 같은 거라서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는 거거든.”


“제법 철학적인데?”


“술장사하다보면 다들 술에 관한 개똥철학 하나씩은 갖게 돼.”


“그럼 술이 꼭 나쁜 건 아니네?”


“그렇지. 풍류에 술이 빠질 수 없고, 문학예술은 너도 알다시피 술과 함께한 역사잖아.”


“이름난 시인 묵객 치고 술꾼 아닌 사람 없지. 술은 인류역사의 원동력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윤활유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참 너만큼 술 좋아하는 동기도 없었지.”


방선희가 불현듯 대학 시절 생각이 나는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술을 좋아한 게 아니라 문학을 좋아하니까 자연히 술이 따라온 거지.”


“그래, 네 말이 맞다. 네가 동기 중엔 제일 잘 나갔으니까. 난 네가 금방 등단할 줄 알았어.”


“등단은 무슨. 난 원래 생활문학 지지자였어. 등단이나 독자를 위한 가식적인 문학이 아니라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같은 문학정신으로 생활하고 생활 자체가 문학인 그런 삶 말이야.”


이철백도 대학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히며 어느덧 목청이 안개처럼 가라앉았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글 좀 써, 이제.”


“글? 이제야 무슨 글.”


“이제야가 아니라 드디어지. 드디어 글을 쓸 때가 된 거지.”


방선희가 미간에 힘을 잔뜩 넣고 맥주잔을 부딪쳐 왔다. 이철백은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벼운 두통을 느꼈다. 문학,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꿈이었다.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잠자던 꿈을 방선희가 두드려 깨우고 있었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같은 거 어때?”


방선희가 다소 짓궂은 표정으로 홍세화의 에세이집을 입에 올렸다. 이철백은 택시를 소재로 삼는 에피소드라면 차고 넘치게 많아서 자신 있긴 했지만 남의 플롯을 모방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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