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D:인터뷰] ‘헌트’ 이정재-정우성, 배우가 감독이 된다는 것②


입력 2022.05.24 23:54 수정 2022.07.28 10:42        데일리안 (프랑스 칸)=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포스터 ⓒ이하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포스터 ⓒ이하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시나리오 작업을 포기하고 ‘이거 안 된다, 내가 뭐라고 이걸 하고 있나’ 생각한 순간도 많습니다. 그렇게 밀어두었다가, 한 달 지나면 뭐가 조금 될 것 같은 느낌이 생기면 다시 컴퓨터를 켰죠. 켜 놓고 한 자도 못 쓴 채 여섯 시간, 열 시간. 써 보다 한 줄 풀리면 주욱 써지고, 그렇게 조금씩 ‘헌트’를 완성 또 완성해 갔습니다.”


연출 데뷔작 ‘헌트’(감독 이정재, 제작 ㈜사나이픽처스․㈜아티스트스튜디오,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지난 19일 자정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월드프리미어로 공개하는 영광을 누린 감독 이정재의 말이다.


이틀 뒤, 이정재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칸 테라스 드 페스티벌에서 이뤄진 인터뷰에 참석해 ‘헌트’를 둘러싼 다양한 고심들을 털어놨다. ‘헌트’의 초고는 ‘남산’이라는 이름의 시나리오였고, 6년의 시간 속에서 영화 ‘헌트’가 됐다. 배우 출신이 아니라 해도 여느 감독이면 다 겪을 자괴감, 그 끝에 오는 창작의 기쁨을 맛봤다.


'남산' 판권을 살 때 이 장면도 예상했을까 ⓒ '남산' 판권을 살 때 이 장면도 예상했을까 ⓒ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 끝나고 한재림 감독이 ‘선배님, 스파이영화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서 ‘남산’이라는 시나리오를 알게 됐어요. 현재 2고, 3고 작업 중이다, 초고 쓰신 분(조승희 작가)이 한 감독 의견을 반영해 2, 3고를 쓰고 있다고 들은 게 ‘헌트’와 인연의 시작입니다.”


“판권은 영화 ‘대립군’(2017) 때 구매했어요. 구매 직전에 한재림 감독에게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남산’ 시나리오가 주인을 찾고 있는데, 매물로 나왔는데(웃음) 내가 사도 되겠나. 한 감독이 할 의향 있는지 물은 거죠, 먼저 인연이 된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요. 여러 방향으로 개발해 봤지만 나는 안 하기로 결정했다, 마음에서 떠났다고 해서 사게 됐어요. 당신이 안 살 거면 내가 사겠다, 그럼 내가 한 번 고쳐 볼게, 하게 된 거죠.”


“시나리오는 감독이 고쳐야죠, 잘 쓸 수 있는 감독을 찾다가 정지우 감독께 의뢰했어요. 정 감독도 시나리오 개발 과정을 해보더니 ‘예산 많이 들어가는 영화이고, 그 예산에 충족한 볼거리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만들어 온 이야기 방향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볼거리 충족 영화를 할 수 있는 감독이 아니다’라고 고사를 했습니다.”


두 남자의 신념, 그 진심의 결말 ⓒ 두 남자의 신념, 그 진심의 결말 ⓒ

이후 시나리오는 판권을 산 이정재의 선택으로 한재림 감독 손으로 갔고, 석 달의 작업 끝에 ‘역시나 저는 아닌 것 같다’는 사양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잘 쓸 감독을 찾다가 결국 제가 쓰게 된 거예요. 포기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도 써 주지 않으면 내가 쓸 거야! 하게 된 겁니다. 컴퓨터를 잘 못 해서 몇 번을 날려 먹고 까무러치고, ‘대립군’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최종 본은 지난해 촬영 직전까지 수정했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시작을 상세히 말하는 모습에서 ‘헌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쓸 때부터 영화 공개 후 이어질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생각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왜 샀느냐, 왜 쓰기 시작했느냐, 그때부터 머리가 폭발할 것 같고. 저는 긴장하면 위가, 윗배가 부어요. ‘나는 왜 이걸 써야 되지?’, 그 괴로움 속에서 주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초고는 주제가 저하고는 맞지 않았어요. (박)평호도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평호와 유정의 관계에도 성적인 관계가 있고. 이건 저한테는 도저히…. (김)정도도 인물이나 비중이 약하고, 평호의 원탑 영화라 정우 씨랑 함께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고요.”


“제작비가 이 정도(순제 200억원 규모)면 주인공이 투탑, 쓰리탑, 포탑…적어도 투탑이어야죠. 정도에게도 평호에게도 강력한 명분이 있어야 큰 규모 영화를 끌고 나갈 수 있고요.”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매직 미러' 장면 ⓒ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매직 미러' 장면 ⓒ

연출할 생각이 아니라 스파이영화를 좋아해 제작자 입장에서 판권 구매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보니 상업적 가늠에 대한 고민이 먼저 시작됐던 속내가 그대로 묻어 났다.


“인물의 관계라는 것에는 주제가 있어야 해요. 관계에 주제가 깃듭니다. 평호와 정도, 두 인물의 관계와 주제를 찾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왜 난 이걸 해야 하지?’ ‘이정재 너는 관객과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 시나리오 디벨롭(발전) 자체가 오래 걸렸습니다. 또 어렵게 주제를 정했지만, 영화가 주제만 있으면 안 되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야 하니까 다시 오래 걸렸고요. 큰 흐름을 뒤집는 과정이 대여섯 번 있었고, 상세는 말할 것도 없고 큰 A, B, C, D안이 존재했고, A로 가다가 다시 B로 간 게 현재 버전입니다.”


시나리오 완성은 또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를 관객에게 데려다 주는 일에는 캐스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남자의 엇갈린 신념, 나만 옳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끝내는 둘 다 틀렸을지 모르는 비극을 표현해야 하기에 두 주인공의 캐스팅은 실로 중요하다.


배우 이정재가 연기할 박평호와 쌍벽을 이룰 만큼 에너지와 매력을 갖춘 배우가 김정도 역에 필요했다. 이 또한 쉽지 않았다. 30년 친구 정우성이 선뜻 캐스팅 수락을 하지 않았다.


배우 정우성의 말을 빌자면,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만의 만남인 만큼 작품보다 재회에 방점이 찍히고, 재회의 의미가 앞서는 게 관객이 ‘헌트’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방해물이 될까를 우려해 출연을 고사했다. 그러나 평생 ‘깐부’의 계속된 러브콜로 정우성이, 김정도 역에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안착하면서 흐름이 순조로워졌다.


뤼미에르대극장이 있는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테라스에서 셀프 촬영 중인 이정재와 정우성(오른쪽부터) ⓒ이정재 SNS 화면 갈무리 뤼미에르대극장이 있는 팔레 드 페스티벌 건물 테라스에서 셀프 촬영 중인 이정재와 정우성(오른쪽부터) ⓒ이정재 SNS 화면 갈무리

감독 이정재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 주연 배우 정우성에 대해, 배우를 넘어 사람 정우성에 대해 존의를 표했다. 동료 배우가 아니라 감독의 모습이었다.


“잘생겼다고 멋진 연기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생각이 멋지고, 생각이 바르고, 생각이 섹시해야 멋진 연기가 나옵니다. 정우성은 모든 마음이 그렇게 갖춰져 있어서 촬영하기 편했습니다.”


오래 산 부부의 얼굴이 닮듯, 오랜 두 친구의 얼굴이 ‘헌트’ 안에서 언뜻 언뜻 비슷했다는 의견에 “닮았다고요? 닮고 싶네요”라고 답한 이정재는 감독으로서 관객들에게 3가지 장면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나에게 말하는 것인지 상대에게 말하는 것인지 복합적으로 오묘한 느낌을 주는 ‘매직 미러’ 장면, 정우성과 한몸으로 뒹군 ‘계단’ 시퀀스, 빨강도 파랑도 덧없어져 ‘회색’으로 뒤덮인 순간이다. 감독 이정재가 연출에 공들인 이 세 장면에는 신념의 충돌, 공동 목표의 확인에 이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영화적으로 집약돼 있다.


1년 차이로 데뷔한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다시 감독 정우성과 이정재가 되어가는 모습. 배우가 감독이 된다는 것, 영화인으로 성장하는 풍경이 한국을 넘어 5월의 칸을 달구고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