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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아재가 된 테리우스 안정환의 리즈 시절, 손흥민·박지성과 실력 동급? 외모 우월?? (ft.영상링크-당몰야)


입력 2022.04.12 11:04 수정 2022.04.12 21:12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 데일리안 ⓒ 데일리안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축구 선수 중에 한 명이었던 안정환에 대해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정환은 최근 축구 예능에서 이동국과 함께 ‘어쩌다 어벤져스’라는 팀을 지도하고 있는데요. 꾸준한 몸 관리로 2년 전까지 마흔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했던 이동국 코치와는 달리 감독을 맡고 있는 안정환은 무려 10년 전인 2012년 은퇴를 했기 때문에 축구인으로서 위대한 업적이 덜 부각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뛰어난 언변으로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정환에게 이제는 ‘예능인’이라는 타이틀을 주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뼈 속까지 축구인인 그의 인생을 ‘축구’를 빼고서는 논할 수 없습니다.


안정환. ⓒ JTBC 안정환. ⓒ JTBC

요즘 세대들에게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위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소 탱크’ 박지성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손흥민과 박지성은 월드컵에서 3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 선수 중에는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레전드 선수가 바로 안정환입니다.


현재 손흥민과 선배 안정환의 실력을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안정환의 플레이를 가까이서 지켜 본 축구 팬이라면 현재 손흥민에 버금가는 실력과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꺼라 생각됩니다.


1998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한 안정환은 운동선수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수려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당시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외모를 갖췄다 해서 팬들은 그를 ‘테리우스’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빼어난 외모 이면에는 초등학교 시절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 축구를 시작한 불우한 사연도 함께 알려지면서 그는 대중에게 더욱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가 되었습니다.


물론 빼어난 외모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까지 갖췄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그를 축구인으로 기억하려 하고 있습니다.


1997년 4월 중국과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한 그는 아쉽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 열린 코리아컵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멕시코가 어떤 팀입니까. 1년 전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에 뼈아픈 1-3 패배를 안긴 팀인데 이런 팀을 상대로 안정환이 동점골을 넣으면서 축구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제대로 각인시켰습니다.


1998년 프로 입단과 동시에 안정환은 고종수, 이동국 등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며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습니다. 이들 중 안정환이 이듬해 곧바로 K리그 MVP를 차지하게 되면서 조금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K리그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던 안정환은 2000년 7월 페루자로 임대 이적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이탈리아 세리에A 진출에 성공한 선수가 됩니다.


지금이야 한국 축구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워낙 활발하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선수가 유럽리그, 그것도 유럽 3대 리그에 해당하는 세리에A를 누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 16강전서 골든골을 성공시킨 안정환. ⓒ 연합뉴스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 16강전서 골든골을 성공시킨 안정환. ⓒ 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나서 4강 신화를 이룩했던 23인의 태극전사 가운데 안정환은 설기현 현 경남FC 감독과 함께 유이한 유럽파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 받는 안정환은 그 당시만 해도 상대 수비를 제치고 골을 기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대표 선수로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무리지만 대다수 축구인들은 체력이 빼어났던 박지성, 최고의 슈팅력을 갖고 있는 손흥민도 기술적인 면만 놓고 보면 안정환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고 평가합니다.


아직도 우리의 뇌리 속에서 쉽사리 잊혀 지지 않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4강 신화의 당당한 주역으로 우뚝 섰던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16강전에서 골든골을 넣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세리에A 소속이었던 구단과 불화를 겪습니다.


당시 페루자 구단주는 안정환을 두고 '샌드위치조차 사먹을 돈이 없는 길 잃은 염소 신세 안정환이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고 망언을 했습니다. 이탈리아 내에서 살해 위협까지 느낀 안정환은 결국 페루자를 떠나 일본 시미즈 S펄스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안정환이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과 조별리그서 골을 기록한 뒤 반지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정환이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과 조별리그서 골을 기록한 뒤 반지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탈리아를 떠난 뒤부터 안정환은 여러 차례 팀을 옮기며 ‘저니맨’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시미즈 S펄스와 요코하마 마리노스 등 일본 팀을 거친 그는 2005년 프랑스 리그 팀 FC메스와 계약하며 다시 한 번 유럽 무대를 밟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뒤스부르크와 계약하며 분데스리가에도 진출하게 됩니다.


2006년 생애 두 번째 월드컵 무대를 밟은 안정환은 조별리그 1차전서 토고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승리의 주역이 됩니다. 현재 손흥민처럼 당시 몸담았던 유럽리그를 주름잡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월드컵에 유독 강했던 그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행복한 축구 선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독일 월드컵 이후 변변한 유럽 커리어는 없습니다. 2007년 수원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로 다시 돌아온 안정환은 친정팀 부산 아이파크를 거쳐 2009년 다롄 스더와 계약을 맺으며 중국 C리그에 진출하게 됩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이끌었던 허정무 감독이 그의 경험을 높이 사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시켰지만 그는 본선에서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후 안정환은 2012년 2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최종전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치르며 축구 선수로서 인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안정환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A매치 총 71경기에 나서 17골을 기록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한국 축구 역사에 명장면으로 손꼽을 만한 강렬한 득점포를 자주 쏘아 올린 그는 예능인이기에 앞서 현재 축구 선수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대선배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유튜브 당몰야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HeGhPBqviTE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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