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이냐 사실상 배당이냐…삼성·SK 보상안 법정 간다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6.06.12 13:25  수정 2026.06.12 13:25

주주단체, 협약 무효소송·효력정지 가처분 착수

삼성 경영진에 "주총 안건으로 다시 물어라" 요구

액트도 주주명부 확보전…국민연금·블랙록 압박

ⓒ뉴시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노사협상을 넘어 주주권과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주주단체들이 노사가 합의한 성과급을 주주총회 절차를 우회한 '사실상의 이익배당'으로 규정하고 협약 무효소송에 착수한 데 이어, 삼성전자 경영진에는 해당 제도를 주총 안건으로 다시 상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반도체에서 시작된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가 자동차와 조선, 정보기술(IT) 업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정부 일각에서도 주총 결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과 정부 판단에 따라 그동안 노사가 결정해온 성과급 제도가 주주 동의까지 받아야 하는 사안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와 투자자보호연합회는 이날 서울 삼성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경영진에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을 주총 안건으로 올릴 것을 촉구했다.


주주운동본부는 전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근로자에 대한 성과 배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동의를 건너뛴 절차의 흠결을 바로잡자는 것"이라며 "성과급의 규모와 방식, 지속 기간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 주주에게 가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27일 민경권 주주운동본부 대표가 이날 경기 수원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지난달 27일 가결된 임금협약의 효력을 회사가 스스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도 내놨다. 주주운동본부는 노조뿐 아니라 협약에 서명한 경영진에도 책임이 있다며 주주가 참여하는 공개 논의를 시작하고 재의결 절차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투자자보호연합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성과급 지급 규모와 관계없이 주총 동의를 거치는 선례를 삼성전자가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종진 투자자보호연합회 대표는 "성과급이 얼마든 주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친다면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국내 대표 기업으로서 관련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 대응도 병행한다. 주주운동본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식 성과급 협약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두 회사 주식을 한 주 이상 가진 주주를 대상으로 소송 참여자도 모집할 계획이다.


이 단체는 회사의 이익 처분 권한이 종국적으로 주주에게 있다며, 주총 의결과 상법상 이익배당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미래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임직원에게 배분하기로 한 협약은 사실상 위법배당에 해당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도 별도로 삼성전자 주주명부 확보에 나섰다. 주주명부 열람·등사를 통해 소액주주를 결집한 뒤 주주제안이나 주총 의결권 행사 등으로 성과급 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주주단체들은 국내외 기관투자자에도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주주운동본부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블랙록과 뱅가드, 캐피털그룹, 노르웨이 국부펀드, 스테이트스트리트 등 주요 기관에 서한을 발송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에는 성과급 협약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과 기업 경영진과의 대화, 주주행동 지지 여부 검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안건 상정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과 글로벌 기관들이 실제 행동에 나설 경우 성과급 논쟁이 향후 주총 의제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쟁점은 영업이익에 연동한 성과급을 임직원의 노동에 대한 보상 비용으로 볼지, 주주 권한이 미치는 이익 처분으로 볼지다. 기업은 성과급을 우수 인재 확보와 성과 창출을 위한 인건비로 처리해 왔다. 특히 글로벌 기술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에서는 실적에 연동한 보상체계가 핵심 인재 유출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반면 주주단체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다년간 성과급으로 미리 배분하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주주환원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줄어든다고 보고 있다. 단순한 인건비 결정을 넘어 노사가 향후 이익의 용처를 사전에 정한 만큼 주주 동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정부도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을 도입할 때 주총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법과 상법, 노동조합법 등에 관련 절차를 명시하는 방안이 일각서 거론되지만 법제화 여부와 적용 범위, 기존 협약에 대한 소급 적용 가능성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논쟁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와 조선, 플랫폼 업종의 노조도 임금·단체협약에서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면서 반도체에서 만들어진 보상 공식이 다른 산업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처럼 업황 변동이 크고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호황기에 정한 성과 배분 공식이 장기 투자 여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반대로 기업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려면 글로벌 수준의 보상체계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이번 법적 공방의 핵심은 성과급 액수보다 기업이 창출한 이익의 배분 기준과 결정 권한에 있다는 관측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단체가 소송과 주총 대응, 기관투자자 압박에 동시에 나서면서 노사 합의로 마무리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제도가 자본시장과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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