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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연상호 감독의 '지옥', 디스토피아로 말하는 휴머니즘


입력 2021.11.29 13:19 수정 2021.11.29 13:2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후속 웹툰, 내년 하반기 공개 예정

영상화 논의는 아직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 또 한 번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9일 공개된 후 하루 만에 전 세계 넷플릭스 TV 쇼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여러 나라의 시청자들은 '지옥'의 메시지부터 연출 방식까지 담론을 제시하고 해석하며 또 하나의 '연니버스'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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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다른 상황에서 '지옥'을 공개하게 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란 기록을 쓰게 될지는 몰랐다고 얼떨떨해했다.


"한국 순위에서 2위 정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그날 저녁 1위를 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잠을 잤는데 다음날 여기저기서 글로벌 1위를 했다고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어리둥절했었죠."


연상호 감독은 '지옥'이 국가와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인들에게 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삶과 죽음, 죄와 벌 등 보편적인 주제와 고민이 전 세계인들에게 유효했던 것 같아요. 외부적으로 10여 년 전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전 세계에 보여준 신뢰가 쌓여있어서 지금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옥'은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든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이레 등이 출연했다. 연상호 감독은 지금의 라인업을 꾸릴 당시,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았다.


"생김새의 닮음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영상은 움직이고 살아 숨 쉬잖아요. 이 캐릭터를 정지 화면으로 봤을 때 닮음이 아니라 캐릭터가 풍기는 분위기와 닮은 배우가 누구인가를 생각했어요. 배우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배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반도' 때부터 리딩 대신 작품의 방향성을 브리핑하는 자리를 만들어요. 이틀 동안 배우들에게 연출 방향을 설명했어요. 그때 배우들에게 부탁했던 건 브리핑했던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새 진리회 정진수 의장의 유아인은 뒤틀린 카리스마를 표현하며 '지옥'의 디스토피아를 완성하는데 가장 공이 높은 배우 중 하나다. 연상호 감독은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서 유아인이 자신의 색깔을 넣어 캐릭터를 만들어보는 과정을 보며 즐거웠다고 밝혔다.


"'버닝' 고사 때 처음 만나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 셋이 이야기할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유아인 씨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어요. 정진수는 뒤틀린 단단한 논리가 있는데 내면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표현하는데 유아인 씨가 잘해줄 것 같았죠. 세심하고 예민하게 세공하듯이 정진수란 캐릭터를 훌륭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유아인이 비범함으로 승부하면 박정민은 평범함으로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유아인이 연기한 정진수가 세상의 속이며 혼란을 가져오는 인물이라면, 배영재 역의 박정민은 그 세상에 대해 불만을 가진, 즉 '지옥'의 시청자 입장과 가장 닮아있는 캐릭터다.


"박정민 씨는 평범함을 표현하는데 여러 가지 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짜증 섞인 연기나 일상톤 같은 걸 돋보이게 하면서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연기를 찾아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박정민을 보며 '평범함을 표현하는 것에 여러 가지 방식과 비전을 가지고 있구나'란 생각을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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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지옥' 뿐 아니라 이전 작품인 '부산행', '반도' 등에서도 초자연적인 현상을 던진 후 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군상을 그려왔다. '지옥'을 통해 궁극적으로 연상호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휴머니즘은 무엇인가'였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지옥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휴머니즘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나누고 싶었어요. 주변 사람들과 이야깃거리가 떨어졌을 때 '지옥'을 보시면 또 재미있게 의견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옥'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작품이다. 오락적인 요소가 배제되고, 인간들의 갈등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을 비판한다.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진입장벽이 높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지옥사자들의 고지 시연과 화살촉 집단의 극악무도한 범죄 등 폭력적인 장면들도 다수 등장한다.


"화살촉의 폭력성 같은 것들이 극단적으로 묘사가 됐어야 했어요. 다른 표현이 가능했을 것 같단 의견도 동의는 합니다. 여러 가지 수위에 대해 논의를 했어요. 만화에서는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해요. 그래서 만화에서의 몇몇 장면은 빼고 다른 식으로 묘사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을 본 후 시청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두고 논쟁을 펼치기 바랐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낳고 싶지는 않았다. 새 진리회 사제들의 유니폼을 민트색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종교 사제 느낌보단 공무원이나 공권력의 상징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디자인이 나왔고요. 만화는 흑백이라 색깔을 지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실사 영화로 하면서 색깔이 필요해졌죠. 이런 류의 의복이 선거 운동원들의 옷과 비슷하더라고요.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전혀 쓰이지 않은 색깔을 찾았어요. 의상 실장님께서 지금의 민트 색깔을 추천해 줬고, 그 색이 주는 차분하면서 서늘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죠."


'지옥'에서 죽을 날짜를 고지하는 천사는 '방법'으로 연상호 감독과 인연을 맺은 배우 정지소다. 연상호 감독은 그가 '지옥'의 이스트에그같은 존재라고 밝혔다.


"저는 지옥'을 코스믹 호러 장르라고 생각해요. 미지의 초자연적인 존재와 그와 대비되는 인간의 작음이 공포의 근간을 이루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고지를 내리는 천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순 없지만 존재를 궁금하게 만드는 게 코스믹 호러의 재미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외적으로 이스트에그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거죠. '부산행'에서 첫 번째 좀비가 심은경 씨였던 것처럼 말이죠."


'지옥'은 정체불명의 지옥사자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열린 결말로 남겨둔다. 다른 드라마라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추적하는 일이 이야기의 큰 뼈대가 될 테지만, '지옥'은 인간 군상에 초점을 맞췄다. 연상호 감독은 지옥사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힌트를 남겼다.


"미지의 존재가 미지의 존재가 아니게 되면 이 작품이 코스믹 호러로 장르적인 특성에 벗어난다고 생각해요. 후속 이야기에서도 지옥사자의 존재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는 않아요. 다만 지금의 이야기보다 구체적인 설명 같은 것들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정체에 대해 조금 힌트를 드리자면 지옥의 사자라고 표현되지만 인간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상호 감독은 자신이 작품을 통해 그리는 디스토피아를 주인공의 희생으로 극복 안을 제시했다. 배영재와 송소현(원진아 분)가 아기의 죽음을 맞기 위한 고군분투, 결국엔 자신들의 죽음으로 지켜낸 아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특성 중 설명할 수 없는 게 희생 같아요. 극적인 요소이자 설명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죠. 이 작품의 시작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문을 열잖아요. 마지막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끝나는 것이 맞지 않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옥'은 고지를 받고 처참하게 죽어간 박정자(김신록 분)가 다시 부활하며 막을 내린다. 이는 시즌 2를 한껏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다. 연상호 감독은 최규석 작가와 여건이 됐을 때 자유롭게 다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지옥'이 전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자, 잊히기 전 웹툰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박정자의 부활은 이 세계 안에서 또 다른 초자연적인 일이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란 상상이 즐거운 것 같아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일이 일어난 이후 사람들의 움직임과 변화가 중점이 될 것 같아요. 최규석 작가와는 올여름부터 이야기를 구상했고, 지금은 많이 마무리가 된 상태입니다. 내년 하반기 정도에 만화로 먼저 선보일 예정이고, 영상화에 대해서 논의된 바는 아직 없습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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