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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아이들의 목숨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아동학대 사각지대' 대책은?


입력 2021.11.29 04:48 수정 2021.11.27 13:21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계모에 맞아 숨진 3살 아기…직장파열, 뇌출혈, 고인 혈흔 등 국과수 학대의심 소견

정부, 만 4세 넘겨야 본인진술 가능 인식…나이 안 돼 올해 2017년 출생 아동 대상 조사서 빠져

전문가 "영유아건강검진 받으러 갈 때 누가 다친 아기를 데려가겠나…학대 사례 발견 어려워"

"전수조사 범위 만 48개월 미만 영유아까지 확대해야…적극적 아동방지책만이 사각지대 해소"

3세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의붓어머니 이 모씨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3세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의붓어머니 이 모씨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숨진 세 살(38개월) 아이가 나이 기준을 채우지 못해 올해 아동학대 전수검사에서 빠졌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동학대 사각지대'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만 4세를 넘겨야 학대 피해 본인 진술이 가능하다고 보고 지난 10월부터 2017년 출생 아동을 대상으로 조사 중인데, 숨진 아이는 38개월이라 조사대상에서 빠졌던 것이다. 전수조사 대상의 전면 확대 등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요청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경찰청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오모(3)군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계모 이모(33)씨를 구속하고, 이어 23일 친부 A씨를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숨진 아동의 직접적 사망원인이 직장(대장) 파열로 추정된다고 경찰에 전했다. 이외에도 뇌출혈, 찍힌 상처, 고인 혈흔 등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대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오군은 학대 여부를 점검하는 올해 정부의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 대상자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등은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 중인 만 3세(2017년생) 2만6251명을 대상으로 안전과 소재를 조사 중이었지만, 2018년 8월생인 오군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계모 이씨는 지난 9월 "아이가 다리를 다쳐 쉬어야 한다"며 오군을 어린이집을 퇴소시켜 실제 오군이 어린이집에 등원한 기간은 하루 뿐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6월에도 오군은 두피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봉합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여러 학대 의심 정황이 있었음에도 정부의 아동학대 감시 체계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본인진술과 의사표시 등을 이유로 지난 2019년부터 만 4세를 넘은 아동에 한정해 해당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이 연령 이하 아동에 대해서는 영유아건강검진 등을 통해 학대 의심 사례를 관찰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영유아건강검진은 강제성이 없어 부모가 검진을 미루면 학대 정황을 알아채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보험관리공단 관계자는 "검진 시기를 놓치거나 국가 검진을 안 받는 사례가 있는데 다음으로 미룰 수 있다"며 "영유아건강검진이 법으로 강제한 게 아니기 때문에 검진을 받으시라 안내만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영유아 검진을 받으러 갈 때 누가 부러지고 다친 아기를 데려가겠느냐"고 반문하고 "학대 상처가 다 낫고 데려갈 텐데 영유아건강검진으로 아동들의 학대 사례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사망한 43명 중 29명(67%)이 만 3세 이하 영유아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현행 전수조사가 실효성이 없다며, 전수조사 대상의 확대 등 적극적인 아동학대 방지 대책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가정방문사업도 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아직 시범단계에 머물고 있는 만큼 조속히 전수조사 범위를 만 48개월 미만 영유아에게로 확대해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가정방문사업을 2024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다.코로나19 업무가 몰린 탓에 보건소에서 신규 사업을 시행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관계자는 "2024년까지 전국 254개 보건소에서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많은 보건소들이 코로나 대응을 하면서 신규 사업을 진행하기 부담스러워 한다"며 "일단, 내년까지 50개 보건소에서 사업을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독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공혜정 대표는 "학대 당하는 아이들의 목숨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영유아건강검진은 보조수단으로 두고, 아동학대 사례 발굴의 주요 수단은 전수조사 범위 확대로 조속히 가야 한다"며 "만 48개월 미만 아동까지 전수조사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노혜정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은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가정을 방문해 가정양육 상황을 확인하고 취약한 부분이나 문제 상황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생애초기 건강관리사업처럼 전문적인 관리자가 가족과 관계를 맺어 양육을 돕고 공공시스템과 연계해주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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