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이 도시바 잡은 날…8년 뒤 오늘 젠슨 황 만난다 [나우앤덴]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6.01 10:18  수정 2026.06.01 11:07

2018년 6월 1일 도시바 딜 클로징…8년 만의 귀환

아버지가 접은 꿈…아들은 AI 반도체 심장부에 섰다

지난 3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 현장에서 SK하이닉스 전시 부스를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운데 왼쪽)와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 오른쪽)ⓒSK하이닉스 뉴스룸

8년 전 오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일본 도시바메모리 투자 딜을 마무리했다. 약 4조원을 베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무모한 도박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8년 뒤 오늘, 그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난다. 그 사이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의 승자가 됐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

최태원 회장의 반도체 승부수에는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로 경영위기를 맞았고 1980년대 초 결국 문을 닫았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그 꿈이 아들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2012년 최태원 회장은 그 숙제를 꺼내 들었다. SK그룹 내부의 반대는 거셌다. 매년 수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대규모 장치 산업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내가 밀고 가겠다"는 한마디로 격론에 종지부를 찍었다. 연간 적자 2000억원을 내던 하이닉스를 3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그가 남긴 말은 짧았다. "SK하이닉스가 행복해질 때까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뛰겠다." 회사는 인수 다음 해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2017년 영업이익은 13조7000억원을 찍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인수를 위해 지난 2017년 4월 24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연합뉴스
세 번의 승부수

첫 번째 베팅이 맞아떨어지자 두 번째가 왔다. 2018년 6월 1일이다.


최 회장은 주변 만류에도 4조원 투자를 강행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한 기업이었다. 그는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의 마지막 승인이 떨어진 건 그해 5월 17일이었고, 6월 1일 딜이 공식 클로징됐다.


세 번째는 2020년이었다. 인텔 낸드사업부를 10조3000억원에 인수해 낸드 부문 2위 자리를 굳혔다.

아픈 손가락이 효자가 되다

도시바 투자는 처음엔 실패처럼 보였다. 당시 계약에는 기술·정보 접근과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SK하이닉스의 의결권은 향후 10년간 15% 이하로 묶였다. 투자 직후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불황에 접어들고 기업공개까지 무기한 연기됐다. 지분 가치는 투자금 아래로 떨어졌고 SK그룹의 대표적인 '아픈 손가락'으로 꼽혔다. 증권가 일각에선 "4조원을 쓰고 들러리 선 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전은 AI 붐이 만들었다. 도시바메모리에서 이름을 바꾼 키옥시아는 2024년 말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이후 주가가 폭등했다. 4조원 안팎을 투자한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관련 지분 가치는 14조원을 넘어서며 투자 원금의 3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전략적 활용도 빛났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시도를 지분을 활용해 막아냈다. 합병이 성사됐다면 낸드 2위인 SK하이닉스보다 덩치가 더 큰 경쟁자가 탄생할 뻔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도시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인수와 관련해 2박3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지난 2017년 4월 26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아무도 믿지 않았던 HBM

세 번의 인수 뒤에는 더 조용한 승부가 있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SK그룹의 지원 아래 시장이 가장 침체됐던 시기에도 HBM 연구개발 예산은 결코 삭감되지 않았다.


그 인내가 빛을 발한 건 2022년 말이었다. 챗GPT 등장과 함께 AI 열풍이 불었고 SK하이닉스가 그 자리를 꿰찼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약 60%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12년 인수 당시 연간 2000억원 적자를 내던 회사는 이제 연간 4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증권사들은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250조~290조원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8년 뒤 오늘, 대만에서

오늘 최 회장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개발자 행사 'GTC 타이베이 2026'에 참석한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로 공개 석상에서 젠슨 황 CEO와 마주하는 자리다. HBM4 공급과 AI 인프라 확대, TSMC까지 낀 반도체 3각 밸류체인 협력이 논의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8년 전 오늘 도시바 딜을 닫으며 낸드플래시 경쟁력을 확보했다. 8년 뒤 오늘 그는 AI 반도체의 심장부에 서 있다. 무모하다는 말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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