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5월 25일 현대토건사 창립…현대 출발점
거북선·유조선·소떼…'해봤어?' 정신이 만든 현대
고(故)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현대자동차그룹
79년 전 오늘, 서울 중구 초동 한 건물 입구에 간판 하나가 붙었다. '현대토건사(現代土建社).' 자동차 수리공장을 운영하던 서른두 살 정주영 창업주가 건설업에 뛰어든 날이다. 직원도, 장비도, 기술도 없었다. 간판 하나가 현대그룹의 시작이었다.
간판 하나에서 재계 1위까지
정주영은 왜 하필 건설업을 택했을까. 관청에 들렀다가 건설업자들이 공사 대금으로 뇌물을 받는 것을 보고 "이 판은 내가 정직하게 하면 이길 수 있겠다"고 결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현대토건사는 창립하자마자 미군 부대 숙소 공사를 수주했다.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로 출범했다. 한국전쟁이 터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미군 관련 공사를 수주하며 오히려 사업 기반을 다졌다.
낙동강 고령교와 한강 인도교 복구, 경부고속도로, 중동 주베일 산업항, 서산 간척지 개발까지. 그의 도전 정신이 닿을 때마다 대한민국의 지도가 바뀌었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정주영은 같은 말로 받아쳤다. "이봐, 해봤어?"
현대는 1967년 자동차 산업에, 1970년대에는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현대그룹은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재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자동차 수리공장 옆 간판 하나로 시작한 회사가.
고(故)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이 지난 1985년 2월 충남 서산 간척사업 현장에서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의 세 가지 장면
1972년, 조선소도 없이 그리스 선박 수주를 따냈다.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꺼내 보이며 "우리는 이미 500년 전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했다. 울산 조선소와 선박이 동시에 완공됐다.
1984년 2월 25일, 서산 앞바다 간척 공사에서 거센 물살을 막지 못해 난항을 겪자 폐유조선을 방조제로 밀어 넣었다. 전 세계 어디서도 시도한 적 없는 공법이었다. 약 4700만평의 바다가 농지가 됐다.
1998년 6월, 정주영은 소떼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넘었다. 분단 이후 민간인이 정부 관리 동행 없이 판문점을 통과한 첫 사례였다. 그해 10월 501마리를 추가로 이끌고 다시 넘었다. 83세의 나이였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정주영 창업회장 서거 25주기를 맞아 지난 2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추모 음악회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정주영이 남긴 것, 정의선이 받은 것
정주영은 2001년 3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건 거대한 기업만이 아니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손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0년 지휘봉을 잡았다. 정주영 창업회장이 건설·자동차·조선으로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다면,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수소차·로보틱스·도심항공모빌리티(UAM)로 현대차를 모빌리티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아이오닉 시리즈가 세계 올해의 차를 석권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전기차 만족도 상위권을 휩쓸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로봇 사업에, 슈퍼널을 통해 하늘길에도 뛰어들었다. 미국 관세전쟁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중국 업체의 추격이라는 새로운 파고 앞에서 정의선 회장은 또 한 번 판을 바꾸는 도전에 나서고 있다.
올해 2월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식에서 정의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님의 신념과 모든 도전은 사람에서 시작됐다. 사람을 믿으셨고 사람을 위한 혁신을 이루셨다."
할아버지는 간판을 걸었고 손자는 그 방향을 바꾸고 있다. 정신은 바뀌지 않았다. 79년 전 오늘, 초동 건물 입구에 걸린 그 간판은 지금도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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