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베조스와 이건희의 선택…그리고 29년 뒤
18년 뒤 같은 날, 이재용은 삼성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AI 생성 이미지
1997년 5월 15일(현지시간), 아마존닷컴이 나스닥에 첫 상장됐다. 공모가는 주당 18달러. 1994년 창업, 1995년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2년 만이었다. 베조스는 아버지에게 사업 성공 가능성을 30%라고 말했다고 훗날 밝혔다. 본인이 실제로 생각한 확률은 10%였다. 월스트리트는 온라인 서점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신반의했다. 그날 아마존의 시총은 약 4억 달러였다.
같은 달, 한국에서 이건희 회장은 전혀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올림픽 공식 파트너(TOP)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불안이 커지던 시기였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1996년 "브랜드 가치는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며 글로벌 이미지 제고를 강조했고, 그 실천으로 1997년 IOC와 계약을 맺었다. 삼성은 이듬해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무선통신 분야 공식 파트너로 활동을 시작했다.
정반대였던 방법론
두 사람이 1997년 선택한 방향은 극과 극이었다. 베조스는 주주들에게 "단기 이익보다 장기적 관점을 우선하겠다"고 못 박았다. 첫 주주서한에서 고객 중심과 장기 투자를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상장 이후에도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철학은 달랐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신경영을 선언한 이건희 회장은 이후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이어갔다. 반도체에서 D램 세계 1위를 달성한 뒤 다음 과제로 '브랜드'를 택했다. IOC 파트너십은 그 전략의 정점이었다. 제품이 아니라 이미지를 팔겠다는 선언이었다.
같은 해, 서로 다른 위기
두 사람 모두 1997년에 위기를 맞았다. 아마존은 상장 이후에도 적자를 이어갔다. 베조스는 이익 대신 성장에 투자하겠다고 버텼다. 이건희 회장의 1997년은 더 극적이었다. 그해 11월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수많은 재벌이 무너졌다. 삼성전자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핵심 사업 경쟁력을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어온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외환위기 속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올림픽 파트너십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를 브랜드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2000년 인터브랜드 조사에서 삼성은 처음으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진입했다. 브랜드 가치는 이후 수십 배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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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후의 성적표
아마존의 2026년 현재 시총은 약 2조9000억 달러다. 18달러짜리 주식은 수차례 액면분할을 거쳐 수천 배로 불어났다. AWS는 클라우드 시장을 만들었고, 아마존은 유통·물류·미디어를 넘어 AI로 뻗어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2020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쌓은 유산은 남았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2328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냈다. 인터브랜드 기준 삼성 브랜드 가치는 현재 약 900억 달러(세계 5위권)로, 1997년 이건희 회장이 올림픽에 베팅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바통을 넘겨받은 자의 숙제
이건희 회장이 올림픽을 통해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를 키웠다면, 그 바통은 18년 뒤 같은 날짜에 이재용 회장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15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맡아오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재단 이사장직은 그룹 경영권과 직접 연결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 승계 작업의 첫발로 평가했다.
그로부터 10년, 이재용 회장은 두 개의 족쇄를 잇따라 벗어냈다. 202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혐의에 대해 대법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고, 올해 5월에는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세 완납을 마쳤다. 삼성 일가 전체 상속세는 약 12조원으로 국내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재용 회장 본인 몫은 약 2조9000억원. 이재용 회장은 모친·남매와 달리 계열사 지분 매각 없이 배당금과 개인 신용대출만으로 이를 완납했다. 사법 리스크와 상속세라는 부담이 동시에 해소되면서 재계는 이재용 회장이 AI·반도체·바이오 분야 대규모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왕국의 무게
그러나 29년이 지난 오늘, 삼성은 또 다른 시험대 위에 서 있다. AI 반도체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성과 보상과 조직 운영을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이 결렬되며 총파업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기술 초격차와 글로벌 브랜드를 동시에 키워낸 삼성은 이제 '세계적 기업이 된 뒤의 성장통'까지 마주하게 됐다. 어쩌면 그것도 1997년 두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1997년 5월, 한 사람은 18달러짜리 꿈을 팔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올림픽에 삼성의 이름을 걸었다. 두 방법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둘 다 옳았다. 그리고 그 베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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