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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⑩] 지리산 고민시, ‘평행소설’ 연출부터 눈에 쏙


입력 2021.11.03 08:09 수정 2021.11.03 08:0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고민시 ⓒ드라마 '스위트홈'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블로그 kwhyun2880 배우 고민시 ⓒ드라마 '스위트홈'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블로그 kwhyun2880

우리 주변에는 ‘해피 바이러스’를 지닌 이들이 있다.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그들. 배우 중에도 화면을 뚫고 나올 만큼 상쾌한 에너지 강한 이들이 있다. 구체적 근거가 생기기 전에 우선 호감부터 생기고, 보고 있노라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고민시도 그런 배우 중 한 명이다. 핏빛 어둠에 물든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 2018)에서 반딧불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명희, 현실 고교생의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해 눈길을 빼앗던 배우 고민시. 귀여운 외모에 충청도 욕은 차지고, 어른 매니저 이상으로 자윤을 챙기는 우정이 눈물겹던 명희는 자윤이 “전 아무것도 몰라요” 순수를 가장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고 배우 고민시는 작품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마녀’ 때보다 살을 쏙 빼고 발레리나로 분한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연출 이응복, 2020)에서도 입으로 세상과 괴물과 싸웠다. 고민시가 연기한 이은유는 주변 인물들에게 던지는 일명 ‘사이다’ 일침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막내 레인저 이다원 역의 배우 고민시 ⓒ드라마 '지리산' 홈페이지 현장포토 막내 레인저 이다원 역의 배우 고민시 ⓒ드라마 '지리산' 홈페이지 현장포토

그리고, 이응복 감독이 배우 고민시를 다시 기용했다. 현재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지리산’(연출 이응복, 극본 김은희, 제작 에이스토리·스튜디오드래곤·바람픽쳐스)으로 불렀다. 지리산국립공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의문의 사고와 이를 파헤치는 레인저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에서 해동분소 막내 레인저 이다원 역이 고민시에게 맡겨졌다.


씩씩하고 밝기는 하지만 거친 입담은 더 이상 없다. 양갈레 머리에 해맑은 미소가 특유의 귀여움을 사랑스럽게 보이게 한다. 4회까지 방영된 지금, 큰 활약은 없으나 등장만으로도 즐거운 미소를 부른다. 전설의 레인저에서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서이강(전지현 분) 선배 대신 지리산을 발로 뛰고, 지리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강인한 의지에 영혼 상태로도 지리산을 지키는 인물이 된 강현조(주지훈 분)와 조우하곤 한다.


영화 '평행소설' 캡처화면 ⓒ이하 출처=네이버 블로그 ss34600 영화 '평행소설' 캡처화면 ⓒ이하 출처=네이버 블로그 ss34600

배우 고민시를 더욱 눈여겨보게 된 건 영화 ‘평행소설’(2016)이다. 불과 3분짜리 단편영화인데 흥미로웠다.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소설을 쓰는 남자가 이야기 속 여자를 음독으로 죽이려 한다. 여자는 죽고 싶지 않다. 소설을 써 내려가던 남자의 연필심이 부러진다. 시간을 번 소설 속 여자는 자신도 종이를 찾아 만년필(소설 속에서 남자가 선물한 것, 남자는 작가와 동일한 모습이다)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작가는 소설 속 여자가 적는 내용대로 결말에 대해 고뇌하며 여자를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남자가…,


이 뒤는 나름의 큰 반전이라 소개하지 않겠다. 소설 속 인물이 죽고 싶지 않아 작가의 글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설정은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과 같다.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 속 인물이자 작가와 같은 공간에 실존하는 인물인 것도 동일하다. 다른 점은,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서는 작가가 소설 속에 없고, 주인공이 자신을 살리려는 방법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이 자신을 살렸느냐의 결말이 다르다.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 고민시 ⓒ영화 '평행소설'의 한 장면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 고민시 ⓒ영화 '평행소설'의 한 장면

유명한 수작과 설정이 비슷하고 상영시간도 불과 3분에 불과하건만 ‘평행소설’은 충분히 매력 있다. 먼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소설을 쓰는 작가, 소설 속 주인공이 실은 모두 고민시 자신이라는 점이다. 고민시는 배우가 되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이후, 캐릭터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살아있는 인물처럼 이야기 밖을 내다보는 극 중 캐릭터가 영화에는 소설 속 여자로 표현됐고,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인 자신은 소설을 쓰는 작가로 표현했고, 그 전체를 스스로 감독이 되어 연출했다.


배우로서의 고뇌와 아이러니, 극중 인물과 이를 표현하는 배우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기막히게 표현한 설정에서 배우 고민시의 깊이가 느껴진다. 작가가 쓰는 대로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의자와 숨결을 불어 넣으려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시도에서는 배우로서의 정체성,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로서 책임감이 가득하다.


또, 소설 속 주인공이 쓰는 이야기와 현실 속 작가가 쓰는 이야기가 ‘서로에게 소설’이 되는 것으로 설정하고 영화 제목도 ‘평행소설’로 지었는데. 이러한 구도도 재미있지만, 영화의 결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평행하지 않고 서로에게 간섭돼 있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영화 ‘평행소설’은 제4회 SNS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깜찍 발랄한 아이디어, 그 안에 담긴 예술인으로서의 철학이 향후 배우 고민시의 연기에 어떠한 모습으로 발현될지 자못 궁금하다. 웨딩 플래너로 일하다 연기를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상경했다는 갈증과 열정이 얼만큼 창대한 결과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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