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기준 경제·군사력만은 아냐
공산체제 중국 선진국 인정 못 받아
혁신·변화·국제사회 내 역할 중요
통상적으로는 고도의 산업과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를 가리켜 선진국이라 표현하지만 사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중요하게 판단하는 건 사실이지만 경제력만으로 선진국을 규정하지 않는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선진국을 정의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이라며 “ 소득 수준이 중요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바 있다.
장 교수는 “국민소득이 높은 중동 산유국들을 아무도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며 “그 부가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축적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자리 잡고 살던 조상 덕에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형국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또한 “이런 경제학적 정의만으로 선진국을 설명하기엔 절대 충분치 않다”며 “그보다 삶의 기본적 욕구가 안정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어야 그게 선진국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학자들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선진국의 길을 찾는 방향은 결국 앞서 있는 국가들의 모습에서 찾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규정 사회학 박사는 “경제, 지리, 문화, 역사 등 우리와 가장 밀접한 미국과 중국, 일본이 사실상 세계 경제 3강인 만큼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상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선진국인데 중국은 아닌 이유…국제관계
미국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대부분 영역에서 세계 최강국이다. 2021년 GDP는 22조6752억 달러, 1인당 GDP는 6만3000달러 수준이다. 2021년 연간 국방비는 7405억 달러(863조원)에 달한다.
중국도 대국(大國)이다. 미국보다 넓은 땅에 인구는 집계조차 어려울 만큼 많다. 경제 규모는 올해 예상 GDP가 16조6400억 달러로 세계 2위 수준으로 미국 뒤를 잇고 있다.
두 나라는 같은 경제 대국이지만 미국은 선진국,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체제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장 위구르족으로 대표하는 인권 탄압 문제와 최근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 등 공산당의 반인권·반시장 정책이 세계 무대에서 동의를 얻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세계적 선도 국가는 적어도 막대한 부존자원, 문화적 우위, 선진적 과학·기술력, 제도적 우월성 등 네 박자가 맞아야 한다”며 “문제는 제도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될 수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반중 정서가 커지는 모습이다. 주요 7개국(G7)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경제 실크로드)에 참여할 만큼 친중 국가로 손꼽히는 이탈리아가 “중국은 다자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민주주의 진영과 같은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전제국가”라고 비판하면서 일대일로 참여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는 중국과 맺은 경제 협력체 탈퇴를 선언했고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온 유럽연합(EU)과의 포괄적 투자협정도 사실상 무산될 위기다.
반면 미국은 국제사회 주요 국가들, 특히 선진국 그룹에 속하는 국가들과 경제·외교적으로 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주요국 대부분과 동맹 또는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 사안에 따라 대립하기도 하고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동맹·우호 관계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중국이 머지않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중국이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경제 전략을 5년 단위로 세워 명확한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 구상을 마련해 왔다”며 “지난 30년간 큰 성공을 거둔 생산국가를 이제 소비사회로 전환 과정에 있다”며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적어도 경제력에서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일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다. 이에 일부 해외 연구기관들은 20208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 1위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경제 1위가 곧 선진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됐을 때 세계 주요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로치 교수는 “중국이 경제 대국이 되는 것과 별개로 국제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인정받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며 “중국의 개혁과 변화 노력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잃어버린 20년’ 일본의 교훈…혁신과 변화
현재 올림픽이 한창인 일본은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다. 물론 지금도 세계 3위 규모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경제 쇠락을 지적하는 처지가 됐다. 자국 언론마저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대표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는 ‘어느새 후진국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칼럼은 일본을 여러 방면에서 선진국이라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세계 디지털 경쟁에서 뒤처지고 환경과 젠더, 인권 등 선진국이 지향하는 가치관 면에서도 뒤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성평등지수는 세계 120위권 후진국이고 여성 정치인이 극소수인 상황도 꼬집었다.
칼럼은 그 원인으로 시대에 뒤처진 정치·행정 체제를 지목했다. 더불어 “기업도 정부도 눈앞의 이익만 좇는 안이한 이노베이션(혁신)에만 치중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본원적 인벤션(발명)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고 분석했다. 100년이 넘는 전통 깊은 기업이 3만3000여 개가 넘는 일본이고 이런 장인정신이 세계 최고 기술의 일본을 낳았지만 지금은 ‘과잉기술’로 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과잉기술의 대표 사례가 소니”라며 “소니는 오직 초소형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는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되면서 그런 기술은 무용지물이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표준의 변화와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이 디지털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다. 일본은 백신 개발 초기 상당량을 미리 확보했지만 정작 접종률을 올리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은 ‘백신접종권’이라는 허가서를 발급해 백신을 맞는다. 백신접종 대상에게 일본 정부가 백신접종권을 우편으로 발행하고, 접종 대상자는 이를 가지고 다시 백신 사이트에 접속해서 병원을 예약해야 한다. 일본이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을 일괄적으로 파악할 디지털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내수 시장 중심의 경제 구조도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GDP의 80%가 내수로 이뤄지다 보니 국제 무역에 소홀해 스스로 고립을 부른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일본 사회의 아날로그 문화는 디지털 전환을 늦어지게 하고 이는 미래 일본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더불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와 행정, 국제 무역은 일본이 스스로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리더③] 공여국 된 한국…국제 사회 이끌어야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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