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국채·MMF 중심 500억 달러 성장
운용사 상품 설계·증권사 발행과 유통 기회
결제수단·내부통제 등 인프라 구축 관건
토큰증권 제도화로 원화 RWA가 금융권의 새 사업 기회로 떠오르고 있지만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유통·결제 인프라와 내부통제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토큰증권 제도화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맞물리면서 실물연계자산(RWA) 토큰화가 금융권의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내년 2월 개정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이 시행되면 조각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주식·채권·펀드 등 전통 금융상품의 토큰화도 단계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다만 국내에는 관련 상품을 거래할 유통시장과 온체인 결제수단이 갖춰지지 않았고 회계·감사, 수탁과 내부통제 기준도 구체화해야 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들은 원화 금융상품을 글로벌 온체인 시장과 연결하기 위한 사업 구조를 검토하고 있다.
전날 한국 딜로이트 그룹과 타이거리서치가 개최한 행사에서도 원화 기반 RWA의 성장 가능성과 금융회사의 사업 기회, 시장 형성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 등이 논의됐다.
RWA 토큰화는 국채와 펀드·부동산·대출채권 등 현실의 자산이나 관련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해외는 MMF·국채 중심…국내는 조각투자
글로벌 RWA 시장은 국채와 머니마켓펀드(MMF) 등 현금성 자산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블랙록은 2024년 미국 국채와 현금성 자산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토큰화한 ‘BUIDL(비들)’을 출시했다.
BUIDL은 투자상품을 넘어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과 파생상품 증거금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해외에서는 사모신용과 대출채권, 각종 수익권으로도 토큰화 대상이 확대되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약 500억 달러까지 성장했다.
반면 국내 토큰증권 시장은 음악 저작권과 미술품·부동산 등 비정형자산을 소액으로 나눈 조각투자 중심으로 형성됐다.
지난 5년여 동안 누적 발행 규모는 약 6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최인수 신한투자증권 디지털자산부 부서장은 “국내는 비정형자산을 중심으로 일반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해외는 기관 중심으로 MMF와 국채 등 정형·현금성 자산이 성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의 시장 진입도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 인(Chris Yin) 플룸 네트워크 대표는 “미국과 홍콩·중동을 비롯해 주요 금융기관과 로빈후드·페이팔 등 핀테크 기업도 토큰화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며 “아직 시장 형성 초기인 만큼 지금 어떤 위치를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인수 신한투자증권 디지털자산부 부서장이 지난 11일 한국 딜로이트 그룹과 타이거리서치가 개최한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희 기자
운용사는 상품 설계, 증권사는 발행·유통
국내 금융회사들도 원화 금융상품을 글로벌 온체인 시장과 연결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신한자산운용은 글로벌 RWA 특화 블록체인 플랫폼 플룸 네트워크와 원화 표시 토큰화 펀드의 기술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블랙록의 BUIDL 구조를 벤치마크로 삼아 고객확인(KYC)을 거쳐 승인된 지갑끼리만 토큰을 이전하도록 제한하고, 자금세탁방지(AML) 등 글로벌 규제 요건을 적용하는 방안을 점검하고 있다.
토큰화 대상은 원화 표시 MMF형 상품인 ‘K-BUIDL’이다.
가격 변동성이 낮고 기준가 산출과 수탁·회계·감사 체계가 갖춰진 현금성 자산부터 토큰화해 온체인 금융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박성열 신한자산운용 매니저는 “달러에는 BUIDL과 이를 준비자산으로 활용하는 결제·수익 레이어가 있지만 원화에는 토큰화된 현금성 자산이 없다”며 “첫 상품의 목적은 규모가 아니라 레일을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신한자산운용은 역외에서 원화 MMF형 토큰을 발행하고 해외 투자자가 납입한 자금으로 국채와 통화안정증권 등 원화 단기자산에 투자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이후 이를 지급·결제 레이어와 연결하고 채권과 주식·대체자산 등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증권사에는 토큰화할 상품을 발굴하고 발행사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역할이 기대된다.
발행·유통과 투자자 관리를 맡고 은행과 운용사·커스터디·블록체인 기업을 잇는 중개자 역할도 가능하다.
최 부서장은 “증권업은 온체인화를 통한 본업의 효율화와 해외 신사업 기회를 함께 모색할 수 있다”며 “금융회사마다 보유한 고객과 상품, 네트워크와 기술을 활용해 강점을 살릴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통·결제부터 내부통제까지 과제
또 원화 기반 RWA 시장이 형성되려면 토큰 발행뿐 아니라 유통과 결제, 수탁 등 금융 인프라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발행사와 운용사, 증권사·은행, 블록체인 플랫폼과 커스터디 업체의 역할과 책임도 정리해야 한다.
토큰과 기초자산의 권리관계, 기준가 산출과 회계·감사, 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유통되는 금융상품은 기존 계좌 중심의 내부통제만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도 과제다.
이진혁 신한자산운용 이사는 “BUIDL이 보여준 것은 토큰 자체가 아니라 투자자격과 유통 제한, 운용 관리를 함께 설계한 구조”라며 “토큰화 금융의 내부통제는 사후 점검이 아니라 상품 설계 단계부터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를 완화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국내 규제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유통 경로와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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