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B가 띄운 '한국 군함 건조론'
상원은 보조함 2척만 예외 허용
대통령 해외건조 예외 승인권도 제한
지난해 8월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제작한 ‘마스가(MASGA)’ 문구가 쓰인 빨간 모자가 공개되고 있는 모습.ⓒ대통령실
지난 4월 미 해군 지도부가 한국·일본 조선소 활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뒤 국내에서는 '2조8000억원 잭팟' 기대가 확산됐다. 그러나 이후 석 달 동안 백악관 예산처(OMB)와 해군, 의회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OMB는 한국·일본 조선소 활용을 밀어붙였지만 해군은 거리를 뒀고, 의회는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상원은 일부 비전투 보조함에 한해 해외 건조 예외를 열어주면서도, 행정부의 재량적 해외 건조 확대는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발언, 그리고 해임
이 구상을 처음 공개적으로 꺼낸 인물은 존 펠란 당시 해군성 장관이었다. 그는 지난 4월 22일 연례 해군 콘퍼런스(Sea-Air-Space 2026)에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 생산성을 보면 한국·일본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그는 전격 해임됐다. 다만 CNN, 워싱턴포스트(WP), NPR 등 주요 매체들은 해임 배경으로 조선업 개혁 지연과 국방부 지도부와의 갈등을 지목했다. 해외 조선소 활용 발언이 직접 원인이었다는 해석은 워크보트 등 일부 매체 분석에 가깝다.
어느 쪽이든 구상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백악관 예산처(OMB)를 통해 공식 예산 논의로 이어졌다.
OMB의 드라이브…"이건 연구비가 아니라 조달비"
지난달 29일 미국 군사전문매체 브레이킹디펜스는 OMB 고위 관계자 발언을 보도했다. 국방부가 FY2027 예산안에 담아 의회에 요청한 18억5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를 두고 이 관계자는 "누구도 연구에 18억5000만 달러를 쓰지 않는다. 이는 자산 조달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상도 구체적이었다. 선체·기계·전기 구조물은 한국 또는 일본에서 건조하고 전투체계 통합은 미국 업체가 맡는 방식이다. OMB 관계자는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JMU 등을 직접 거론했다.
해군은 선 긋고 의회는 반발
그러나 펠란 후임인 헝 차오 해군 장관 대행은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지난달 14일 하원 군사위원회(HASC) 청문회에서 "해군은 해외 조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모델이 미국 함대 요구에 맞는지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의 반응은 더 부정적이었다. 닷새 뒤인 지난달 19일 상원 군사위원회(SASC) 청문회에서는 더 강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메인주의 앵거스 킹 상원의원(무소속)은 "한국·일본에 구축함 건조를 맡기는 건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판 이래 최악의 아이디어"라며 일본·한국 조선소의 수주 잔고가 이미 넘친다는 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했다. 같은 청문회에서 애리조나주의 마크 켈리 상원의원도 해외 외주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미국 내 해양산업 기반 재건을 거듭 촉구했다.
메인주 재러드 골든 하원의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의 지역구에는 미국 최대 구축함 조선소인 배스 아이언웍스(BIW)가 있다. FY2027 예산안이 DDG-51 구축함 발주를 통상 2~3척에서 1척으로 줄이면서 BIW 노동자 감원이 현실화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골든 의원은 헝 차오 장관 대행에게 "감원이 예고된 해에 같은 예산으로 외국 노동자를 쓰겠다는 건 1대1 맞교환"이라고 직격했다.
결국 하원 군사위원회는 골든 의원의 수정안을 반영한 FY2027 국방수권법(NDAA)을 44대12로 통과시켰다. 해당 수정안은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전투함 조달 계약에 해군 예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상원은 보조함 2척 허용…그런데 대통령 권한 조항 자체를 손봤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지난 11일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을 의결하면서 벌크연료선과 롤온·롤오프(RO/RO) 전략수송선 등 비전투 보조함에 대해 해외 조선소 건조를 허용하는 조항(법안 1019조)을 담았다.
이 조항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예외 신설'이 아니다. 상원안은 현행 연방법(10 USC §8679)에 규정된 대통령의 해외 건조 예외 승인권(waiver authority)을 삭제하고, 훨씬 제한된 형태의 권한을 국방장관에게 새로 부여했다.
법안에 따르면 국방장관은 비전투함 클래스(벌크연료선, RO/RO 전략수송선)에 한해 클래스당 최대 2척까지만 해외 조선소 건조를 승인할 수 있다. 그것도 국가안보상 이익이 입증돼야 하고 건조국이 미국의 조약 동맹국이면서 생산 역량을 갖춰야 하며, 4번째 함정 건조 시점까지는 관련 생산과 공급망을 미국 내로 이전(reshoring)하는 자본투자를 동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자금 집행 30일 전 의회 군사위에 사전 보고·인증하는 절차도 의무화했고 이 인증 책임은 위임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핵심 임무체계나 지휘통제·보안통신 장비는 반드시 미국 또는 동맹국 내 안전시설에서 설치해야 한다는 조건도 들어갔다.
즉 상원안의 골자는 "대통령의 재량적 예외 승인권을 없애고, 그보다 훨씬 좁고 조건이 많은 권한을 국방장관에게 새로 주는" 방식이다. 해외 건조의 문을 일부 열어주는 동시에, 행정부가 향후 독자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기는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석 달간의 흐름을 요약하면 이렇다. OMB는 한국·일본 조선소를 활용한 군함 건조 구상을 밀어붙였고 해군은 신중론을 유지했다. 하원은 전투함 해외건조 금지 조항을 반영한 가운데 상원은 보조함에 한해 제한적 예외를 열어줬다. 다만 그 예외조차 대통령이 아닌 국방장관에게, 까다로운 조건과 함께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국 미국 의회는 일부 비전투함에 한해 제한적으로 문을 열어주면서도, 전투함 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과 행정부의 재량 확대 가능성은 동시에 차단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법안은 앞으로 상·하원 조정(콘퍼런스)과 본회의 표결, 대통령 서명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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