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10% 이어 삼성 10.5%…산업계 성과급 도미노
자동차·조선·통신까지 확산…하청 노조도 원청 수준 요구
상한 없는 성과급 체계 확산 조짐…EVA·FCF 대안 검토
지난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한에 서명한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 ⓒ뉴시스
출발점은 지난해 9월이다. SK하이닉스가 노사 합의로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상한까지 없앴다. 재계에서는 이것을 '하이닉스 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자동차·조선업계까지 유사한 요구가 번지며 산업계 전반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자동차·조선·통신·IT까지
앞서 삼성전자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하며 21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그러나 노사는 21일을 불과 1시간 30분 앞둔 시점인 전날(20일) 밤 10시 40분쯤 극적으로 잠정합의에 서명했다. 노사가 공동으로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고 지급 상한을 없애는 내용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300조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31조5000억원이다. 이 중 부문 공통 40%인 12조6000억원이 DS부문 전체 7만8000명에게 고르게 돌아가 1인당 약 1억6000만원이다. 메모리 사업부는 나머지 재원 배분과 기존 OPI까지 합산하면 1인당 약 6억원에 달한다. 노조가 요구했던 영업이익 15% 제도화는 관철하지 못했지만, 반도체 부문 성과급 체계를 처음으로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의안은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쳐진다.
재계에서는 이번 삼성 합의가 산업계 전반의 기준선이 됐다고 본다. SK하이닉스 10%, 삼성 10.5%라는 수치가 업계에 각인되면서 다른 기업 노조들의 요구 수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 잠정합의가 기준선이 됐다
삼성전자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업종 노조들이 줄줄이 교섭 테이블에 같은 요구를 올렸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 10조3648억원의 30%인 약 3조1000억원을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했다. 현재 교섭이 진행 중이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영업이익의 30%에 대한 성과 공유를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할 방침이다. 지난해 영업이익 약 2조원 기준 6000억원 규모, 1인당 최대 7500만원이다. 업계에서는 HD현대삼호와 한화오션 등 경쟁사 노조도 유사한 수준을 요구할 것으로 본다.
LG유플러스 노조는 영업이익의 30% 성과급과 임금 총액 8% 인상을 동시에 요구했다. 카카오는 본사를 포함한 5개 계열사 법인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모두 가결시킨 상태다. 카카오페이·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 4개 계열사는 이미 쟁의권을 확보해 언제든 파업이 가능하다. 27일 본사 2차 조정이 결렬되면 창사 이래 첫 그룹 공동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5일 창사 첫 전면파업을 단행했다. 영업이익의 20% 성과급이 핵심 요구였다. 방산업계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성과급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고, 한화그룹 11개 계열사 노조 협의회는 초기업노조 출범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노동조합협의회 관계자들이 11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이소영 기자
원청 넘어 하청까지 번진 불씨
성과급 갈등은 정규직 교섭을 넘어 원·하청 구조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이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개정 노조법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될 경우 사용자 책임을 폭넓게 인정해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과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실제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 협력업체인 피앤에스로지스 노조는 지난달 30일 원청인 SK하이닉스에 교섭 요구서를 제출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하청 노조가 성과 배분을 이유로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한 첫 사례다. SK하이닉스가 교섭에 응하지 않자 이 노조는 지난 15일 곽노정 대표를 수신인으로 한 단체교섭 재요구 공문을 보낸 데 이어 지난주 내용증명까지 발송했다.
국내 재계는 두 가지 대안 방식을 검토 중이다. 하나는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로, 세후 영업이익에서 설비 등에 투입한 자본 비용을 빼서 기업이 실제로 창출한 이익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OPI 산정에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도 2021년 이전까지 이 방식을 썼으나 직원들이 "계산 방식이 불투명하다"며 반발하면서 영업이익 연동 방식으로 바꿨다. 다른 하나는 FCF(Free Cash Flow·잉여현금흐름)로, 설비투자액을 제외하고 남은 실제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다. 대형 로펌과 컨설팅사에 성과급 산정 방식 자문을 의뢰하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다만 EVA든 FCF든, 계산 방식에 대한 불신이 먼저 해소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입장문을 통해 "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합의안을 도출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번 합의는 삼성전자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인 만큼, 노동계가 이를 일반화해 과도한 성과급 요구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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