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크리에이터 입짧은햇님이 지난 19일 유튜브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올리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최근 제기된 이른바 '주사이모' 논란과 관련해 "지인의 소개로 강남구의 한 병원에서 처음 만난 이 씨를 실제 의사로 알고 있었고, 바쁠 때 집으로 와 주사를 놔줬다"며 "여러 사정을 더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한 불찰"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제기된 논란과 의혹을 돌아보고 있으며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부에서 제기된 마약류 식욕억제제 '나비약' 복용 의혹도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다. 운동과 식단 관리로 살을 뺐다고 말해온 대표 먹방 유튜버의 뒤늦은 고백은, 약으로 빼는 다이어트 유행의 문제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뉴시스
'나비약'은 펜터민(phentermine) 계열 식욕억제제를 일컫는 은어다. 알약 모양이 나비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별칭으로, 비만 환자의 단기 체중감량 보조용으로만 허가된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펜터민을 포함한 마약류 식욕억제제에 대해 BMI 30 이상 또는 27 이상이면서 고혈압·당뇨 등 동반 질환 있는 경우에 한해 처방하고 4주 이내 단기 사용을 원칙으로 하며, 만 16세 미만 청소년 처방 금지 등 엄격한 사용 기준을 두고 있다. 단순 미용 목적 복용은 위 기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어지러움·두근거림·불안·불면·의존 위험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은 약이다.
유현재 서강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을 한국식 외모 문화와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봤다. 그는 "한국의 미디어 종사자들은 평균적인 대중보다 높은 윤리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일은 오히려 그 기준이 더 낮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먹방 유튜버도 시청자들의 '그래도 말라 있어야 예쁘다'는 기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청자들도 사실 그런 몸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화면 속 인물이 많이 먹으면서도 보기 싫게 살이 찌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고, 그 기대를 출연자에게 사실상 강요한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런 이미지를 반복해서 소비하다 보면 애초 비현실적인 상태였던 것이 마치 달성 가능한 표준인 양 받아들여지고, 결국 시청자 스스로도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면서 약물 다이어트와 외모 강박의 악순환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디어에 노출되는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비법'을 따라간다. 경찰과 보건당국은 '나비약'을 두고 온라인에서 불법 유통되는 마약류 식욕억제제 구매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이라는 내용의 청소년 대상 경고문까지 배포하고 있으나 '나비약'은 10·20대 사이에서는 처방 없이 SNS에서 불법 유통되는 약을 살 수 있어 입소문을 타왔다. 실제로 입짧은햇님을 통해 '나비약'의 존재가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효과는 확실한 것 같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여성 연예인의 복근이 도드라진 몸 등이 '건강하게 마른' 표준처럼 소비되지만 실제로는 체지방률이 지나치게 낮아 월경 이상·골다공증·우울감 등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방송·유튜브·숏폼 플랫폼에는 '한 달 -8kg 다이어트', 연예인 이름을 걸고 하루에 클렌징 주스 한잔으로 버티며 운동까지 소화하는 다이어트 루틴 콘텐츠가 매일 쏟아진다.
2024년 국내 출시된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뒤이어 도입된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까지 더해지며 '약으로 빼는 다이어트'가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두 약물 모두 원래는 당뇨·비만 환자용 주사제다. 식약처 허가 기준 역시 BMI 27 이상(비만 관련 합병증 동반) 또는 BMI 30 이상 성인으로 제한하고 있고, 메스꺼움·설사·담낭질환·췌장염 등 중대한 이상반응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만이 아닌 사람에게 처방할 경우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나, 문제가 된다는 기준선이 정해져 있지 않아 요즘은 암암리에 돈만 지불하면 약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유 교수는 "미디어가 외모 규범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기보다 마른 몸을 프로페셔널함과 자기 관리의 증명으로 여기는 대중의 욕망과 플랫폼 알고리즘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방송사나 플랫폼의 가이드라인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그는 "방송사에 책임을 묻고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 요구해도, 결국 시청률과 조회수가 움직이는 구조에서 큰 변화가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면서도 "적어도 약물·극단적 다이어트 경험을 숨긴 채 건강하게 살을 뺐다고 포장하는 식의 기만은 막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광고·콘텐츠에서 특정 체형을 '이상적인 몸'으로 과도하게 강조하는 표현을 규제하거나, 체중 감량 효과를 내세운 광고에 의학적 근거·부작용 정보를 고지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다이어트약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비만과 당뇨는 분명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고, 위고비·마운자로 등 신약은 적응증에 맞게 사용할 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치료 옵션이다. 식욕억제제 역시 의사의 면밀한 진료와 모니터링 아래 단기간 쓰일 수 있다. 문제는 의학적 필요와 상관없이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기 위해', '여름 휴가 전까지 얼른 살을 빼기 위해' 약을 찾게 만드는 사회적 압박과 미디어 환경이다.
입짧은햇님처럼 많이 먹는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마저 카메라 앞에서 체중 강박에 시달려야 했다면 그 책임을 어디까지 개인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많이 먹지만 보기 좋게 말라 있어야 한다는 모순된 요구를 오랫동안 소비하고 재생산해 온 건 결국 시청자와 플랫폼, 방송사 모두다. 외모 강박을 강요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처해 온 이 구조를 돌아보지 않는 한, 나비약이든 다른 이름의 주사든 아직 걸리지 않았을 수 있는 또 다른 처방약이 계속해서 연예계를 떠돌 수밖에 없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