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보다 수시, 신입보다 경력채용 일반화
청년세대, 미래 예측 가능성 낮아 불안
임금구조 개편이 선행되지 않은 정년연장
미래세대 일자리 시장에 악영향 분명해
김동명 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지난 4일 국회 앞에서 법정정년연장 연내처리 및 공무원 소득공백해소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주변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한숨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청년세대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다. 일자리·주거·결혼·육아·자금 형성… 저마다의 고민이 산적해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일자리'다.
청년들이 '가고 싶은' 기업의 경우, 정기공채보다는 수시 채용, 신입보다는 경력직 채용이 일반화돼 있어, 청년들은 채용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아 불안이 극에 달한다. 기업의 수시 채용과 경력직 선호로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취업 준비만 해도 자동으로 경력과 소득의 단절이 일어난다. 비극적이다.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또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대학원에 가고,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이렇게 고학력·고스펙 청년 인력의 초과공급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현재 기업의 니즈(경력직)와 청년의 상황(신입·중고신입)이 맞지 않게 된다. AI도입에 따라 일자리 대체 효과까지 일어나고 있어 청년들은 하루하루 힘겹다.
최근 발표된 국가데이터처의 통계를 살펴보면, 20~30대 '쉬었음 인구(비경제활동인구)'는 73만6000명, 30대 쉬었음 인구는 33만4000명을 기록하면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치만 봐도 너무나 심각하다.
왜 이런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장기저성장과 경기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도 있지만, 정권과 무관하게 진행돼야 할 '청년 일자리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처 간 협업이 약화돼버리거나 예산 확보가 쉽지 않게 되는 등 정책 동력이 현저히 약화되는 일들을 겪게 된다. 정책의 실행만 남겨두고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일명 '전시행정'이라 일컫는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도 문제다.
여기에 더해, 기업의 채용 방식 변화 역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이다. 경영 환경의 변화로 채용 트렌드가 정기 공채보다는 수시 채용과 경력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이 누적되고,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65세 법정 정년연장입법 연내통과 촉구 양대노총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법정 정년연장 연내 입법을 목표로 두고 속도를 올리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소득 공백(소득 크레바스)을 해소하고,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해법이라는 이유에서 양대 노총이 '연내 입법화'를 강하게 요구한 탓이다.
법정 정년연장은 소득 크레바스를 완화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세대의 채용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으며, 그 자체로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거나 한국 고령사회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단독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법정 정년연장으로 근로자들의 소득 크레바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은 전체 근로자의 11% 정도에 해당하는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또한 중소기업, 영세사업장, 플랫폼 노동자, 비정규직 등은 사람이 없어 이미 정년이 지나도 계속 일하는 경우이거나, 애초에 법정 정년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어서, 정년 연장이 이들의 고용안정성 개선에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양대 노총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인 '임금체계 개편 여부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임금구조 개편'이 선행되지 않은 정년연장으로써 미래세대의 일자리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상생'을 위해서는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데, 정년연장을 주도하는 양대 노총은 조합원의 이익만을 강조할 뿐 공적인 의식이 이미 무너진 상태로 보인다. 제도적으로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특정 집단이 과대 대표 되면서 사회적 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주요 당사자인 청년들은 논의 테이블에 가기도 쉽지 않고, 가더라도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2030 절반 이상, 정년연장에 찬성'이라는 복수의 설문조사 내용으로 기사가 쏟아졌다. 정말 그럴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1차원적인 정년연장에는 찬성할지라도 '임금구조 개편 선행 여부' 등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파고들게 되면 내용에 따라 다른 응답이 훨씬 많을 것이다. 신규 채용 축소나 승진 병목현상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년연장 논의를 구체적인 내용의 측면에서 파고들면 다양한 고용 형태와 세대에 따른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런데 정부와 여권은 양대 노총의 압박에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초점을 '연내 입법'에만 두어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졸속 추진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정년연장'을 두고 속도전만 펼칠 것이 아니라, 면밀한 소통을 바탕으로 세대 간, 노사 간 균형 있고 섬세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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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서율 연세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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