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 교주로 만들겠다는 건가
인사혁신처장 발탁은 아부 대가?
지금은 정치·경제적으로 시계 제로
최동석 인사혁신처장(당시엔 인사조직연구소장)이 한 말이다. 그는 “이재명은 천재적 행정가이고 정치가”라며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것은 민주당을 민주화시키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필자가 견문이 적은 탓이겠지만 무슨 뜻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재명 후보에게서 그런 구상을 들었다는 것인지 최 처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의 말대로라면 ‘민족 전체’와 ‘국가’도 민주화시키겠다는 게 이재명 비전이고 의지라는 말이겠는데,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무엇이었다고 해야 하는가?
신흥종교 교주로 만들겠다는 건가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이승만 집권기까지 포함한다면 대한민국 헌정사 전반을 거치며 살아온 셈인데 이 나이 되도록 이런 해괴하고 위험한 논리는 듣느니 처음이다. ‘독재시대’라고 좌파가 비난해 마지않는 그 시대에 ‘이승만의 민족’, ‘박정희의 민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전두환·노태우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북한이 ‘김일성 민족’ 운운하더니 그 말과 의도를 배워 흉내 내는가? 소유의 개념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문법(그가 ‘정치문법’이라는 말을 잘하니까 말이지만)부터 제대로 배울 일이었다. ‘이재명의’라고 하면서 소유의 의미는 아니라니!
이런 표현이야말로 독재자를 키워내는 음울하고 섬뜩한 주문(呪文)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은 이런 아부꾼들을 앞세우고 등장했다.
이 대통령을 추켜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의 이미지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기세다. 그는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 때 탄압을 받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 출마하게 된 것이라며 “이 사람은 민족을 구원할 것”이라고 종교적 예언자 흉내도 냈다. 그러다 지난 5월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자 이번엔 “조희대도 이번에 이제 죽을 거죠. 이재명 죽이려다가 지가 죽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그 파기환송심을 아예 무기한 중단시켜 버린 것도 민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는 “이재명에게 5년은 너무 짧다, 10년 20년 해도 될 사람”이라는 말도 거침없이 했다.
작년 6월에 최고위원으로 지명받은 강민구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이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서 이 대표를 ‘당의 아버지’로 부른 것 때문에 여론이 시끄러웠다. 11월에는 이해식 당 대표 비서실장이 빗속에서 연설하는 이 대표를 가리키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글귀를 인용, 칭송의 말을 쏟아냈다.
역시 ‘너무 심한 아부’라고 해서 정치권, 언론, 여론의 반응이 안 좋았다.
인사혁신처장 발탁은 아부 대가?
그런데 그때는 최동석이라는 영재성·천재성(그의 표현을 흉내 내자면)을 두루 갖춘 아부의 대가(大家)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인지되지 못했었다. 그런 사람이 더 강렬한 충성심으로 무장하고 등장할 줄을 대중이 알았다면 강 최고위원이나, 이 비서실장이 바친 충성의 헌사(獻辭)는 진작 빛바래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최 씨는 인사혁신처장으로 발탁됐다. 과도하고 비상식적이면서 반민주적이기까지 한 칭송의 말을 남발한 사람을 정부 요직에 앉히자면 낯간지러울 수도 있겠는데 그들의 ‘정치문법’으로는 당연한 포상일까? 하긴 이왕 그 혁혁한 공적을 치하하기로 했을 양이면 국무총리 자리를 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이 대통령에 대해 유죄의견을 낸 대법관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이처럼 말을 함부로, 경박하고 험하게 하는 사람들을 일부러 골라서 주변에 배치하는 인상을 주는데 그 취지가 궁금하다. 충성심과 공격성, 어느 쪽을 높이 샀을까? 정치를 민주화하고 민족과 국가를 민주화하는 데 이런 캐릭터의 인사들이 긴요하다고 판단했을까?
최 처장은 문재인 윤석열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의 유력인사들(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 정청래 당 대표 후보,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 등)에 대해서까지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가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말이 많으면 적도 많아지는 법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마음 쓰였던지 29일 국무회의 때 한마디 했다.
이건 또 무슨 문법인가? 비난 여론에 대해 비아냥거림인지 자기과시인지 모를 말을 사과랍시고 했다가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감지한 듯 오후엔 기자들에게 ‘사과문’을 배포했다.
지금은 정치·경제적으로 시계 제로
“(그간)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비판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거친 표현이 심려를 끼칠 수 있었다. 송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향후 신중한 언행으로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에 걸맞은 공직자의 자세를 갖겠다”라고 다짐했다.
이들에게 ‘사과’는 자리보존의 부적이다. 그 한마디로 전비(前非)가 상쇄된다는 게 이들의 문법이고 논리인 듯하다.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할 만큼 큰 잘못을 했다면 자리를 내놓는 게 고위 공직자로서의 도리 아닌가? 민주당 내에서 자신에 대한 거부반응이 커진다니까 사과하고 나서는 것으로 봐서 뜻이 남다른 지사(志士)가 아니라 아부에 능한 말 재간꾼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이런 인격 형은 정말이지 대책이 없다.
어쨌든 곡학아세(曲學阿世: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는 행위), 아유구용(阿諛苟容: 남에게 아첨하며 구차스럽게 굶)의 무리에 둘러싸이면 아무리 뜻이 높고 의지가 굳은 대통령이라 해도 그 유혹을 이겨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자신의 성공과 안전을 위해 어떤 가치와도 맞설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확산시켜 온 바가 있다.
출범하기 무섭게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특검 수사와 입법 전횡이 사회를 경직시키는 분위기다. 포퓰리즘적 사회복지정책, 기업 경시·노조 중시의 경제정책, 야당 협박, 안보 태세 이완 등을 체감케 하는 상황 변화가 사회 일각의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적폐청산’의 힘자랑이 요란하더니 지금은 ‘내란 종식’의 기세가 험악하다. 여당 대표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국민의힘 해산’을 을러대는 정치판에 자유민주주의가 비집고 들 여지는 있는가?
지금은 정치 경제적으로 시계 제로다. 새 정부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역대 정권의 과제를 이번에만은 실현해주길 바란다. 그게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를 살리고 정치인 각자를 살리는 길이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정치사의 상식이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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