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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빠와 국민①] '깨시민'에서 '대깨문'으로 열화


입력 2020.10.01 05:00 수정 2020.10.01 06:01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노무현 퇴임 후 지켜본 30~40대 다수

'나꼼수' 시작으로 SNS 통해 공감대 확산

조직·실체 없고…문재인 팬덤 유일한 공통점

'문재인 수호' '검찰·언론 개혁' 무비판적 수용

지난해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수호를 외치며 서초동에서 집회에 모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해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수호를 외치며 서초동에서 집회에 모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민주당 권리당원인 최모 씨(41세 여)는 요즘 정치 효능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한다. 지지하던 후보가 민주당 지도부를 구성했고, 원하는 목소리를 대신 내주는 정치인이 어느 때보다 많아서다. 문재인 대통령을 존경하며, 외부에 정치성향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듣고 주말에는 유튜브 채널 다스뵈이다를 애청하는 이른바 '문팬'이다. 반대파에서는 '문빠' 혹은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처음부터 강성 문 대통령 지지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노무현 정권을 지켜봤고 "민주주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에 깊히 공감했으며,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땐 크게 슬퍼했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로 승화했고, 재벌과 언론, 검찰 등 거대 보수권력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믿는다. 지금도 흑막 속 거대 기득권이 문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주변인'이었던 이들이 주류로 자리잡은 것은 2015년 온라인 당원모집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민주당의 대주주가 아니었던 친노·친문은 이른바 '100만 민란 운동' 등 시민조직을 당내 세력으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공천이나 당 선거 때마다 대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것도 이들의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과정에서 호남세력이 떨어져나갔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공백을 메운 것이 이들이다. 최씨 역시 당시 온라인 당원모집을 통해 권리당원이 됐다.


특징적인 것은 현상은 분명한데 눈으로 확인되는 실체나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노사모의 경우 지역 대표가 있고 민주당의 외곽조직으로 실체가 분명했지만, 이들은 온라인과 SNS를 통해 일부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들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공유할 뿐 구체적인 개인의 면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서울 관악구에서 자영업을 하며 노사모 활동을 했던 김모 씨(61세 남)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나 노사모와는 또 다르다"며 "지난 대선까지는 우리가 '문팬'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네트워크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모든 정치이슈를 '선과 악' 이분법적 해석
거대 기득권이 배후라는 음모론적 인식이 바탕
전체주의·인민민주주의로 변질된 문재인 '팬덤'


다양한 개인의 집합체인 이들을 하나로 끈끈하게 묶어주는 키워드는 '문재인' '검찰개혁' '언론개혁' '토착왜구' 등이다. 대면교류와 비교해 피상적인 한계가 있는 온라인상 소통은 공감대가 큰 상위의 개념에서 이뤄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팬을 자산으로 만들고자하는 일부 정치인의 활동으로 더욱 견고해졌고,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이다. "클리앙이나 이토랜드 등 이른바 ‘친문 커뮤니티’에서 검찰과 윤석열 총장 욕하고 기레기라고 쓰면 무조건 추천 받는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이 같은 습성을 이용해왔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나 추미애 법무부장관 사태로 위기에 몰리자 '검찰개혁을 막기 위한 보수기득권 세력의 준동'으로 규정해 돌파한 것이 대표적이다. 불리한 이슈에는 "가짜뉴스"라며 "언론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 위성정당 설립으로 자신들이 통과시킨 선거법 개정안을 무력화시킬 때에는 "문재인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펼쳤다. '문빠'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자녀의 특혜입학 혹은 특혜휴가와 검찰·언론 개혁이라는 전혀 별개의 문제를 하나의 체계로 이어주는 고리는 음모론이다. 민주당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법부에 이어 국회 '압도적 다수'를 점한 지금도 과거 독재권력과 같은 거대한 기득권세력이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부 인플루언서들이 역할이 컸음은 물론이다.


이를 두고 조국흑서에 참여했던 권경애 변호사는 "K값의 부정선거 음모론, 세월호 고의침몰설, 코링크는 익성 것, 제보자X, 조민 인터뷰, (추 장관 아들) 십자인대파열까지 다른 방송이나 기자였다면 다시는 평생 마이크 앞에 서지도 못할 거짓 뉴스"라며 "팩트가 아니라 마치 가내 수공업 공장처럼 맞춤형 거짓뉴스를 생산해 주입시키는 김어준의 영향력은 대한민국 '40%'에게는 절대적"이라고 비꼬았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체도 없는 절대악을 만들어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정치를 인식하고, 선의 정점으로 대통령을 상정해 의사를 투영하는 것은 전형적인 전체주의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팬덤정치의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절차를 건너뛰고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데에 있다"며 "인민이 제 의지를 의원에게 대리시키지 않고 지도자를 통해 직접 표출하는 것이 전체주의 정치문화의 특징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의회도 사라지고 의원도 사라진다. 의회는 통법부, 의원들은 친위대가 된다"고 꼬집었다.


진보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다원적 통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누락되고 직접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모든 인민을 다수 인민의 '총의'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은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며 "정부가 개혁의 기수가 되기 때문에 모든 걸 국가 권력을 통해 추진하면서 다원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대자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투쟁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행위자들"이라고 했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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