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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국테크놀로지그룹家 장녀·장남의 경영권 '반기', 참 볼썽사납다


입력 2020.09.04 07:00 수정 2020.09.03 16:39        서영백 산업부장 (ice@dailian.co.kr)

경영권 분쟁 점입가경...장녀 이어 장남도 아버지 후견인심판 가세

장녀 조희경, 아버지 한정후견인 심판 신청...경영권 확보 의도 의심

조 회장 반박에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 재판 결과 기대 어려워

여론 ‘온도차’... 父 결정 지지, 반기 든 조희경·조현식엔 ‘싸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분당 본사 사옥 ⓒ 데일리안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분당 본사 사옥 ⓒ 데일리안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차남 승계’를 공식화한 아버지의 뜻에 장녀에 이어 장남까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패륜아적 행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형제간 갈등은 지난 6월 조양래 회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보유 지분(23.59%) 전부를 차남인 한국타이어 조현범 사장에게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넘기면서 시작됐다. 한 달 뒤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부친인 조양래 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를 서울가정법원에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갈등이 외부에 알려졌다.


한정후견인은 성년후견제 가운데 하나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에 대해 일부 후견인의 일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부친인 조양래 회장의 주식 매각이 온전한 정신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이 장녀 조 이사장의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조양래 회장이 장녀가 한정후견인 심판을 청구한 바로 다음날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을 넘긴 것이 갑작스런 결정이 아니며 나이에 비해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조 이사장의 주장에 장남도 가세한 것. 아버지 입장이 나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부친인 조양래 회장의 지분 매각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라며 누나의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청구에 동참하고 나섰다. 동생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넘기는 것은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의미인데, 이 결정이 아버지의 뜻이 맞는지 확인하겠다며 갈등을 더욱 확산시켰다.


조희경 이사장이 밝힌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 이유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조 이사장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을 통한 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권 확보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아버지의 뜻에 반해서 자식이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를 할 이유와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조양래 회장은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자 했다”는 조 이사장의 말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미 1000억원 이상 증여 받은 조희경 이사장은 본인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약 99%는 조양래 회장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가운데 조 회장에게 사회공헌 및 환원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사회공헌 및 환원에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다.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의 노림수는 그가 밝힌 입장문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는 “앞으로 행해질 조양래 회장의 의사결정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혀, 향후 경영권뿐만 아니라 부친인 조양래 회장의 재산 상속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남인 자신을 제치고 차남이 경영권을 승계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까지 여론은 조양래 회장의 결정 및 입장에 긍정적이며, 이에 반기를 든 자녀에 대해 부정적이다. 실제 조희경 이사장의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를 두고는 한국정서와 여론의 시각에서 “자식으로써 할 짓이냐”, “돈 앞에 눈이 멀어 부모에게 패륜아적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부정적 감성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지분 구조 등 현실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오히려 후계구도는 명확해진 상황이다. 현재 조현범 사장이 42.9%를 확보한 상황이라 경영권 경쟁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한정후견인 개시 심판 청구로 조희경(0.83%) 이사장과 조현식(19.32%) 부회장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남매가 아버지의 의사 결정 과정이 자발적이었는지 법의 판단을 받는 대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오래전부터 후계자로 차남을 낙점한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 회장은 이미 10년 전부터 업계의 주요 행사에 차남인 조현범 사장과 참석했고, 재계 총수와의 자리에서 ‘둘째 아들(조현범 사장)의 경영 능력이 검증됐다’고 여러 차례 얘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갈등 과정에서 조양래 회장 본인이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왔고,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찍어 두었다”고 다시 한 번 밝히며 자녀 간에 더 이상의 분쟁은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가족끼리 공개적으로 싸워서 득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과거의 재벌 내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가장 최근에 형제의 난을 겪은 롯데그룹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다수의 집안사람들이 법정을 들락거리며 고초를 치러야만 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볼썽사나운 재벌가의 진흙탕 싸움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느냐는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현 한국테크놀로지그룹가(家)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국민은 사남매(지분 10.82%를 가진 차녀 조희원씨는 ‘누구 한명의 편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 전달) 중 누가 경영권을 이어받느냐에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싸움은 여느 집안의 심상한 재산 다툼과는 차원이 다르다. 24개 계열사에 총자산 9조4000억원을 보유한 국내 1위, 세계 7위 타이어 생산업체의 운명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오너 리스크’에 흔들려 자칫 수많은 직원의 일터를 위태롭게 하고, 국가 경제에 큰 해악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다.


세계 시장 여건도 썩 좋지 않은 편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이다. 경영권을 놓고 한가하게 형제자매끼리 치고받을 여력이 없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주력인 한국타이어는 흑자경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701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33.6%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3676억원으로 21.4%나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에서 자동차 판매가 30% 가까이 줄면서 타이어 수요도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출에 큰 타격을 받은 데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고급차 라인에 잇따라 수입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안방 사수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회사가 위기인 마당에 급한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룹의 미래나 직원들보다 경영권이나 상속 등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은 기업경영에서 손을 떼야만 한다. 총수일가의 사적 편익을 위한 과도한 경영권 집착이 문제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갈고 닦은 경영능력이나 검증이 없으면 자신이 보유한 지분만큼 배당이나 받고 살아가면 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후계 갈등은 길게는 자승자박의 악수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만 부채질한다는 점에서 조속하고 원만한 해결이 바람직스럽다. 부디 사남매가 작은 이익을 좇다 큰 손해를 보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서영백 산업부장

서영백 기자 (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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