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대선기획> ´유력 대통령후보,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8>
서울시장 취임과 동시에 ´청계천 복원´ 박차… 대권주자 1위의 ´기폭제´ 마련
“나는 틈날 때마다 CEO시장론과 기업마인드를 역설해왔다. 내가 CEO시장론을 강조한 것은 단지 현대건설에서 15년간 CEO를 역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CEO형 지도자가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명박, <온 몸으로 부딪쳐라>(2007) 중에서
1년 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1999년 말 귀국한 이명박 후보는 2002년 7월 꿈에 그리던 서울시청 입성에 성공한다.
이 후보는 민선 3기 서울시장으로서 재임 기간 4년간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서울숲과 서울광장 조성 등 역대 어느 시장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형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취임과 동시에 착수한 ‘청계천 복원’ 사업의 경우, 불과 1년 만에 청계고가도로를 완전 철거하고 이후 2년3개월간의 공사를 진행한 결과 2005년 10월 5.84㎞의 청계천의 물길을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넘겨줬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은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는 찬사와 함께 “개발독재 시대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신개발주의자’”라는 비판 또한 그에게 안겨다줬다.
복원 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문화유산의 훼손, 그리고 동대문운동장으로 일시 자리를 옮겼던 노점상들의 생계 보장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됐다.
특히 2004년 4월 ‘하이 서울 페스티벌’ 기간 중 “이명박 시장님, 청계천 상인을 도우소서”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한 영세상인의 예는 “내가 어렵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던 이 후보의 평소 주장을 무색케 할 정도.
그러나 이 후보는 포기하지 않았다.
교통대란, 환경 문제 등 수백 가지의 반대 사유에도 불구하고 4200여회에 달하는 협상 끝에 20만 인근 상인들의 협조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시민들을 위한 도심 속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 그리고 생태자원의 보고로 다시 태어난 청계천은 “청계천을 한 번만 둘러보면 ‘이명박 지지자’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시 한 번 이명박의 성공 신화, ‘청계천 신화’를 일궈냈다.
‘행정가 이명박’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음도 물론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하면 된다’는 열정과 의지로 불가능을 극복한 것이다.
“내가 개발독재 시대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신개발주의자’라면 청계천을 지금처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곳을 다 메워버리고 대단위 위락 시설이나 상업지구로 조성하지 않았을까? 기술적으로도 그곳을 메워버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이 후보의 말이다.
기업에서 배운 경영마인드를 공공 행정에 도입한 소위 ‘이명박식 시정(市政)’은 “공무원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시의 행정서비스 조직을 탈바꿈시켰다
예산을 매년 8000억원씩 절감해 시 재정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지하철 건설 부채를 반으로 줄였으며, 서울시의 ‘전자정부’ 시스템은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등을 제치고 2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버스 노선을 공유하는 ‘준공영제’ 도입을 포함한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놓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얘기했다.
버스 회사의 만성적 적자와 시민들의 ‘저렴한 버스비’ 요구는 단말기 부착 아이디어 하나가 해결해줬다.
이와 관련, 이 후보는 자신의 시장 재임시절 이야기를 담은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2007)에서 “버스 개혁의 대타협은 우리가 직접 나서 이룬 게 아니었다. 당사자들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게 장소를 빌려 준 게 우리의 것이 역할이라면 역할이었다”면서 “혁명은 당사자들, 즉 서울시 버스 노조와 마을버스 노조, 시민 단체가 이뤄낸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 후보는 또 시장 시절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시했다.
시장이 되자마자 젊은 시절 살았던 달동네를 찾았으며, 시장으로서 처음 소집한 관계기관 회의가 환자들의 무료 치료를 위한 시립병원 의사·간호사 회의였고, 또 치매병원 설립 등의 사업을 주도해나갔다.
시장 취임 후 ‘첫 작품’은 중증 장애인용 택시 도입이었으며, 당시 월급을 고스란히 환경미화원 자녀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그 고마운 이웃들에게 꿈과 희망을 돌려드리고 싶다.”
서울시장 임기 중 이 후보의 탄탄한 업적과 그를 바탕으로 한 신뢰는 그가 여론 지지율 1위의 대권주자 반열에 오르는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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