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앞에 멈춰선 파업열차, 끝까지 '원칙대로'

이충재 기자

입력 2013.12.31 09:46  수정 2013.12.31 14:52

시민단체 "유야무야 솜방망이 처벌로는 파업 악순환 고리 못끊어"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가운데),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 이상무 공공운수노조연맹 위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철도노조 파업중단에 따른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정부가 세운 원칙을 이번엔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수서발 KTX자회사 설립 중단과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22일 간 달려온 파업열차가 30일 멈춰섰다. 철도노조가 ‘수서발KTX 주식회사 면허발급 취소’ 등 자신들의 핵심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음에도 열차를 멈춰세운 것은 ‘법과 원칙’의 힘이 가장 컸다는 평가다.

노조는 파업 초기부터 직위해제와 손해배상 소송 등 정부의 원칙 대응에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난 28일 코레일의 ‘최후통첩’을 기점으로 복귀자가 늘어나면서 파업철회 직전인 30일 오후 복귀율이 29%를 넘어섰다. 노조입장에선 이미 파업열차 운행을 이어갈 동력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사이 코레일은 불법파업에 따른 대체인력 660명을 모집했고, 기관사 147명과 승무원 70명을 우선 채용해 투입하는 등 운행 정상화에 들어가며 노조를 압박했다. 코레일은 정부와 함께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는 판단이다.

이에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이 모처럼 정치의 본연의 몫인 갈등을 중재하는 일을 해냈다”며 “이에 대한 공과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철도노조의 파업 이후 줄곧 ‘원칙론’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이와 함께 여론도 파업열차를 세운 핵심 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30일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0.6%인 반면 “공감한다”는 답변은 38.8%에 불과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26일 조사에서도 “철도파업이 명분이 없다”는 응답이 55.8%로 “불가피 했다”(29.8%)는 의견 보다 크게 높았다.

이제 정부와 노조, 사측은 ‘역대 가장 긴 파업’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써간 이번 파업을 어떻게 매듭짓느냐는 숙제는 안고 있다.

검경 '영장 원칙대로 집행'…청구액 200억원 달할 듯

우선 철도노조의 파업을 주도한 간부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과 경찰은 영장이 발부된 파업주도 철도노조 집행부 간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원칙대로 집행하기로 했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이날 “지금까지 발생한 철도노조 측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며 “철도노조 지도부와 파업 주동자 등을 대상으로 발부된 체포영장 역시 원칙대로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와 관계없이 코레일에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적극 가담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도부 31명에 대해 소재가 파악되는 대로 검거할 방침이다.

아울러 코레일은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등을 취하하지 않고 원칙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가압류 신청 금액 및 소송 금액은 2009년 파업 추정 손실액 39억원과 이번 파업 추정 손실액 77억원 등 전체 청구액이 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야 위원으로 구성된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에서 ‘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 수위’ 방향을 어느쪽으로 끌고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불씨가 될 전망이다.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대전제 아래 사회통합의 차원도 고려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 '원칙론' 파업 후에도 계속될까

철도노조 지도부는 징계의 칼날에 맞서 현장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파업을 철회하며 현장 투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어 “철도 분할과 민영화 저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각 지부별로 징계 및 현장탄압 분쇄,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투쟁계획을 공유하고 힘찬 투쟁을 결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한 원칙 대응으로 ‘불법 파업→주동자 및 불법행위자 징계→징계 철회→불법 파업’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며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모든 문제를 국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원칙론’을 확고히 했다.

박 대통령의 원칙론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나 대처 영국 전 총리가 불법파업에 맞서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노동운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룬 전례와 비견된다. 핵심은 파업이 끝났다고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을 유야무야 넘어갔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다시 유야무야 '솜방망이' 처벌로 악순환 해선 안돼"

그동안 철도노조의 파업 이후 내려진 징계가 유야무야되면서 불법파업을 키워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전 정부에선 매번 공기업 개혁의 칼을 뽑아왔지만, 강성노조의 저항에 밀려 ‘솜방망이 처벌과 불법파업’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해왔다.

지난 2002년 파업으로 파면된 노조원 19명 중 9명은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했고, 2003년 파면자 58명 중 29명은 소청심사를 통해 복귀했다. 또 2006년 해고자들에 대해서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전원 복직 판결을 내렸고, 2009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40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는 노조가 징계나 고소, 고발 등을 무서워하지 않고 일선현장을 박차고 나서게 만든 요인이었다.

여론도 원칙대응을 주문했다. 철도노조의 파업과 관련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선 ‘엄정한 대처를 통해 법치주의를 세워야 한다’는 답변이 62.5%에 달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불법파업을 주동했던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는 정부의 엄정한 의지가 필요하다”며 “경찰은 노조간부를 조속히 검거하고, 코레일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에 대한 징계를 계획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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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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