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문화 꼬기>접두사 '개'의 남용으로 본 젊은 세태
최근 개똥쑥, 개복숭아가 인포테인먼트 방송 프로그램을 휩쓸었다. 항암 효과 등 약리 효과가 뛰어나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전국의 산과 들에 있던 개똥쑥과 개복숭아가 남아나지 않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심지어 논과 밭둑에 일부러 심은 개복숭아마저 다 꺾어 가고 있다.
본래 ‘개’라는 말은 볼품이 없거나 가치가 적어 보일 때 사용했다. 다만, 그것이 실제 내용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면에서 비롯했다. 개망초나 개떡도 마찬가지다. 개복숭아의 경우 크기와 빛깔도 그렇지만 맛도 쓰기 때문에 비호감이었다. 그러나 쓴 게 몸에 좋을 수 있다. 보통 한약재가 그렇듯이 말이다. 뒤늦게 개똥쑥과 개복숭아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개'자가 들어가는 말이 대유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날을 맞아 이런 청소년 말법을 대대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개 xx’라는 욕이나 ‘개고생’이 담아낸 기존 감정을 융합하고 있다. ‘새끼’라는 말을 강조하거나 ‘자식’이라는 말에 붙이는 것에서 다변화 되고 있다.
‘개’라는 접두어의 용도는 강조용법으로 쓰는데 안 좋은 것은 더 안 좋게 좋은 것은 역설적으로 더 좋게 부각한다. 같은 강조 용법이라고 해도 차이점은 있다. ‘개못생겼다’, ‘개후지다’, ‘개짱난다’, ‘개감동’, ‘개멍청하다’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강화 한다. ‘개간지 난다’, ‘개멋지다’, ‘개귀엽다’, ‘개잘한다’ 등은 모두 좋은 의미를 강조한다. 즉, 부정의 강조와 긍정의 강조인데, 주로 요즘의 어법은 긍정의 부정적 재강조이다.
본래 ‘개’가 붙는 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 ‘쩐다’라는 말에 ‘개’에 붙으면서이다. ‘쩐다’라는 말은 '소금에 쩔다', '땀에 쩔다', ‘냄새에 쩔다’와 같이 평균적인 상황을 넘었을 때 쓴다. 이런 상태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개쩐다’라는 말을 썼다. ‘개’음절이 들었기 때문에 좋지 않는 말이 강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뛰어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 말 가운데 하나가 ‘개드립’이다. 드립은 애드리브의 축약어이다. 애드리브는 즉흥적인 대사나 급조된 발언을 말한다. 개드립은 엉터리 같은 즉흥적인 말을 남발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개드립 개쩐다'와 어울려 애드리브가 뛰어난 상태를 말한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좋은 의미에 ‘개’자가 붙는 점이다. 그냥 예쁘면 아주 예쁘다 하면 되는데 ‘개예쁘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좋지 않는 것을 주로 강조하는 '개'가 좋은 단어에 결합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가 새로운 정체성을 자신들의 신조어로 대변하려는 심리가 국어를 파괴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는 문화 심리를 반영하는 사례이다. "X나"라는 단어가 그 언어와 관계없이 ‘존나’, ‘졸라’, ‘열나’로 파생된 것과 같이 욕은 유희의 대상이 되었다. 같은 평가라도 다른 방식으로 구가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개'를 정해진 단어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잘 안 쓰는 단어에 쓰면서 차별성의 재미를 느낀다. 좋은 말에도 나쁜 뜻의 '개'를 붙여 의미를 강조한다. 있는 그대로 있는 말을 쓰는 사람은 독특한 자기만의 개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이 쓰기 때문에 써야 한다는 강박 심리 안에 휩싸여 있다. 다른 애들이 쓰기 때문에 다 써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또래 문화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불안 심리도 존재한다.
‘개멋지다’라면 의미의 강조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에 대한 질시도 숨어 있다. 어떤 대상이 너무나 멋지게 그리고 잘할 때 ‘개멋지다’, ‘개잘한다’라고 하는 것은 나도 그렇게 하고 깊지만 못하니깐 그냥 매우, 대단히 라는 단어가 아닌 약간 낮추는 말 '개'를 사용한다. 이는 ‘왕’, ‘짱’, ‘캡’이라는 단어가 매우 긍정적인 의미라는 점과 다른 것이다. 동료이거나 또래 그리고 아직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들에게 이런 단어를 쓴다. 하지만 확고부동한 스타에게 ‘개멋지다.’ ‘개간지난다’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어느 세대보다 자아충족의 심리가 강할수록 이런 심리가 강화 될 수 있다. 욕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러한 상태가 되고 싶은 심리를 말해준다. 인정하고 싶지만 대단하다는 것을 표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극찬은 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자신이 없는 심리도 있다. 매우 대단하다고 할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멋지기는 한데 그게 그렇게 가치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스마트 시대에 평가는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현상적으로는 대단하다는 것을 수동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개똥쑥이나 개복숭아처럼 저평가되어 있는 대상이 가치를 발현 할 수 있으면 좋다. 정말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는 상대를 높이 평가하는 용법으로 사용한다면 언어파괴의 비속어라고 불리지는 않을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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