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태클’ 해괴한 미화가 더 무섭다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11.08.04 00:08  수정

우발적 실수 치부 축구문화 위험

현 분위기 방치하면 희생자 또 나와

이런 행위를 단지 ´우발적 실수´나 ´우연한 사고´ 정도로 덮어서는 곤란하다.

영국 축구는 최근 몇 년간 일부 선수들의 동업자 의식을 망각한 ‘살인 태클’로 여러 차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8년 당시 프리미어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던 에두아르도 다 실바의 발목 골절 사건이다. 그해 2월 프리미어리그 28라운드에서 버밍엄 시티의 수비수 마틴 테일러는 아스날 공격수 에두아르도의 발목 부위를 스파이크로 가격하는 위험한 태클로 전반 3분 만에 퇴장 당했다.

쓰러진 에두아르도는 발목주위 뼈가 밖으로 돌출될 정도의 큰 부상으로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1년 가까이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이 끔찍한 부상 장면은 TV 중계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팬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2010년에는 역시 아스날 ´기대주´ 아론 램지가 스토크 시티전 도중 수비수 라이언 쇼크로스의 거친 태클로 인해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살인 태클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블루드래곤’ 이청용(23볼턴)도 희생양이 됐기 때문이다. 이청용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열린 잉글랜드 컨퍼런스(5부리그) 소속 뉴포트 카운티와의 친선경기 도중 상대 톰 밀러의 거친 태클에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청용은 병원으로 후송됐고, 오른쪽 다리에 2중 골절이란 중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활에서 완쾌까지 9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사실상 이청용의 올 시즌은 끝난 셈이다. 회복 이후에도 정상 기량을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청용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가 안 되어 셀틱서 활약하고 있는 차두리도 인터밀란과의 친선경기 도중 거친 태클을 당했다. 차두리는 이에 격분했고,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는 신경전을 펼치기도. 차두리는 지난 시즌에도 발목인대와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접었던 터라 부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위험은 이런 플레이를, 단지 경기 도중 벌어질 수 있는 선수 개인의 우발적 실수 내지는 투지나 승부욕 같은 단어로 미화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빅리그에서도 거친 플레이를 일종의 축구문화처럼 취급하는 잘못된 인식이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은 에두아르도나 이청용같은 끔찍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단지 개인적으로 운이 없었을 뿐´이라며 거친 플레이를 방조하는 축구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별다른 제재 조치조차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인 징계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는 가해자도 실수로 인한 정신적 충격 등을 핑계로 ´피해자´처럼 둔갑시키는 해괴한 미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동업자 의식이 실종된 살인태클은 당하는 선수에게는 부상 당시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회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는다. 실제로 거친 살인태클을 당한 선수들 중 상당수가 부상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거친 몸싸움이나 태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일쑤다.

이처럼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거친 살인태클에 대해 심판들이나 리그에서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더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이청용의 부상만 하더라도 고의적으로 발목을 노린 위험한 태클이었음에도, 심판은 해당 선수에게 퇴장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평정했던 차범근도 1981년 당시 겔스도프에게 당한 백태클로 다리가 부러지며 선수생명에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때 독일에서는 선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플레이를 지양하고 강력한 제재 조치가 마련되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비록 차범근은 후일 겔스도프를 용서해 ‘대인배’ 취급을 받았지만, 맨유의 전설로 유명한 로이 킨은 1997년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에서 미드필더 알피 할란드의 태클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뒤, 훗날 그라운드에 복귀해 똑같은 보복성 태클로 할란드를 응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거친 플레이는 대부분 악순환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런 거친 플레이가 만연하는 대로 소극적으로 방치하다보면 그것이 마치 하나의 축구문화처럼 학습돼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이청용에게 부상을 입힌 톰 밀러는 많지 않은 리그 경력에도 불구, 거친 플레이로 악명이 높았던 선수다. 실전이나 큰 대회도 아닌 연습경기에서 이처럼 상식을 벗어난 플레이를 자행한 것은 결코 우발적 실수로 넘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밀러와 뉴포트 카운티 측이 볼턴 구단에 정식으로 사과의사를 밝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사과만이 전부는 아니다. 차범근처럼 당사자가 잘못을 용서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행위를 단지 ´우발적 실수´나 ´우연한 사고´ 정도로 덮어서는 곤란하다. 살인태클은 스포츠에서의 승부근성이나 의욕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동업자 의식의 실종을 넘어 한 선수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이청용이 당한 비극은 모든 축구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절대 재현 되어서는 안 될 사고다. 방치한다면 언제든 제2, 제3의 이청용이나 에두아르도 같은 불행한 희생자들이 또 생길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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