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내기 제안하는 조씨 부인 역
“제약 많은 조선시대 살아가던 한 여인의 이야기 궁금했다.”
프랑스 고전 소설을 영상화하는 것도, 24년 동안 피했던 사극에 도전하는 것도 손예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려운 시도에 뛰어들었다. 손예진은 어려운 만큼 배우고, 또 그만큼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캔들’은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 조씨부인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분)이 벌이는 발칙하고도 위험한 사랑 내기, 그리고 그 내기에 얽힌 한 여인 희연(나나 분)의 이야기를 담는 작품이다. 손예진은 이 드라마에서 금기의 시대에 맞서 유혹의 내기를 제안하는 조씨 부인 역을 맡았다.
‘스캔들’은 프랑스 고전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다. 국내 시청자들에겐 같은 원작을 공유하는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로 익숙하다. 이 작품이 배우 이미숙, 배용준, 전도연이 출연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전개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만큼 비교는 예상된 일이었다.
‘스캔들’ 손예진ⓒ넷플릭스
그럼에도 손예진은 조선시대의 여성이 욕망을 드러내는, 흔치 않은 표현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어려운 도전인 줄 알면서도 선뜻 응한 이유다.
“제약이 많은 조선시대를 살아가던 한 여인의 뛰어난 재능과 욕망이 어떻게 풀리게 될지 궁금했다. 시리즈라 이야기를 쌓아나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기에 캐릭터도 한층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 봤던 영화 ‘스캔들’도 멋있게 느꼈던 기억도 물론 있었다. 인간의 심리를 대놓고 드러내는 작품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대중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배우에게는 매력적이었다.”
매력적이었지만 표현하기 쉽지는 않았다. “지금도 정답을 찾은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손예진은 조씨 부인의 어린 시절, 조원을 향해 느꼈던 감정의 실체부터 조씨 부인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이유까지.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 캐릭터도, 작품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조원을 향한 감정을 사랑으로만 풀 순 없는 것 같다. 조씨 부인, 즉 조윤은 어릴 때부터 뛰어난 인물이었다. 글도 잘 쓰고, 사회를 읽는 눈도 밝았다. 그런데 그걸 펼칠 기회가 없었다. 그때 나의 모든 걸 보일 수 있는 존재인 조원이 있었던 거다. 그 안에 연정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부러움도 있었을 것이다. 도망까지 가려고 했지만, 현실과 타협하느라 가지 못하지 않나. 그때부터 쌓인 감정들은 대체 무엇일까. 그 고민을 많이 했다. ‘상대를 정말 원하는 게 맞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도 있었다. ‘사랑이었을까’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장르도 낯설었다. 손예진은 ‘스캔들’을 통해 24년 만에 사극에 도전했다.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말한 손예진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사극은 어렵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스캔들’로 사극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은 여전히 힘들었다.
‘스캔들’ 손예진ⓒ넷플릭스
“데뷔 초에 사극을 했는데, 헤어와 의상이 너무 힘들었다. 외적인 것들이 힘드니까 집중도 잘 안 되더라. 그때만 해도 가채를 쓰면 두통이 심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 작품을 놓치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멋있는 사극을 해보고 싶더라. 멋진 옷을 입고, 큰 집에 살면서 위엄을 보여주는 인물이지 않나. 다행히 조선시대 양반은 가채를 쓰지 않았다더라. 물론 한복도 여전히 쉽지는 않았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한 컷 찍고 땀을 닦고, CG로 지우기도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힘들었을 것이다.”
어려운 도전 끝에 완성한 작품이지만 공개 직후 시청자들의 강한 호불호를 야기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손예진은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대신 이 작품만의 곱씹으며 보는 재미를 즐겨달라며 ‘스캔들’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대중적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조씨 부인의 서사는 따라가며 응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악역이라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요즘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빠른 전개도 아니다. 여백의 미가 많은 작품이다. 그런데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이렇게 복잡한 인물을 연기할 일이 많지 않았다. 계속 그 인물에 대해 곱씹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조씨 부인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생각하면서 작품을 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다. 통쾌함이 있거나 엄청난 재미가 있진 않더라도 이 작품만의 미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출연에 응한 이유는 손예진의 소신과도 닿아있다. 이제는 베테랑 배우가 됐지만, 여전히 자신의 연기를 볼 때면 “저때 저렇게 연기한 것이 잘한 걸까”라는 걱정을 한다. 동시에 이제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손예진은 오래, 좋아하는 연기를 하기 위해 지금처럼 과정이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지’, ‘지금 이런 작품을 했으니까 다음 작품에선 이런 걸 보여줘야지’ 이런 걸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마음을 먹은 대로 되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엔 결과에 연연하기도 했다. 작품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책임감도 너무 컸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작품이 잘 되고, 안 되고에 일희일비하면 힘들더라. 좋은 작품도 있고, 예상과는 결과가 다를 때도 있다. 결과는 기대와 달라도 의미 있는 반응을 얻을 때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축적이 되고 좀 더 쌓아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렵지만 도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러면서 또 성장을 하고 싶다. 실망시킬 때도 있겠지만 노력하고 나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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