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국가(failed state)라는 용어가 있다. 실패 국가라고도 번역되는데 글자 그대로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지 못하고 혼란이 깊어지면서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지진과 대통령 암살, 그리고 갱단의 발호로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가 대표적이다. 몽골의 침입을 받을 당시 고려의 상태는 파탄국가라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경손 장군이 주둔했던 나주성의 서성문인 영금문 – 출처 : 직접 촬영
임금과 최우를 비롯한 수뇌부는 강화도로 도망쳐서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면서 섬 바깥의 상황에 대해서 외면했다. 그 상황에서 강화도의 조정에서 각지로 파견한 방호별감과 병마사를 비롯한 장군과 관리들은 백성들을 보호하는 대신 수탈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정작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도망쳤고, 한술 더 떠서 몽골군의 앞잡이가 되어서 다른 지역을 쳐들어가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몽골이 침입하던 시기 내내 이어지면서 많은 백성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백성들 역시 더 이상 버티기를 포기하고 강화도에서 파견한 장군들을 죽이고 몽골군에게 항복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면서 고려는 버림을 받았고, 이전에 존재했던 국가들이 소환되었다. 그래서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백성들은 신라의 부흥을 꿈꿨으며,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서경은 고구려의 부활을 외쳤다. 이제 남은 건 백제 하나 뿐인데 마지막에는 정말 백제의 부흥을 외치는 반란이 일어났다.
전라도지휘사 김경손이 초적 이연년(李延年)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고종 24년인 서기 1237년에 벌어진 이연년의 반란은 고려사 세가에는 아주 짧게 나온다. 하지만 반란을 평정한 김경손과 최린의 열전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나온다. 참고로 김경손은 서기 1231년 몽골의 침입 당시 정주성을 지키고 있다가 결사대를 이끌고 나가서 몽골군을 격파했다. 이후 정주성을 빠져나와 박서가 지키는 귀주성에 합류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귀주성 전투를 진두지휘하면서 몽골군을 공격을 물리친다. 공로를 인정받아 대장군이 된 그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나주로 향한다. 당시 전라도의 상황은 생각보다 안 좋았다. 오늘날의 담양군인 원율 출신인 그는 동생과 함께 사람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 백적도원수(百賊都元帥)라고 자처하는데 백적은 아마 백제를 잘못 표시했거나 고려사의 편찬자들이 일부러 비하하는 표현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반란군의 기세는 생각보다 거셌고, 가담자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김경손 열전에는 무뢰배들이 가담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무뢰배들을 포함해서 먹고 살기 힘든 농민을 비롯한 백성들이 대거 가담했다과 봐야 할 거 같다. 안 그랬다면 이연년 형제가 이끄는 반란군이 지금의 광주광역시인 해양군까지 공격해서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라도 지휘사가 되어서 반란 진압의 임무를 맡은 김경손은 아마도 배를 타고 나주로 온 것 같다. 그가 나주성에 도착하자 곧바로 이연년 형제가 이끄는 반란군이 도달한다. 성루에 올라간 김경손은 그들을 보고 비록 숫자는 많지만, 짚신을 신은 촌민에 불과하다는 발언을 한다. 무시무시한 몽골군과 싸운 경험이 있던 그에게 이연년 형제의 반란군은 정말 오합지졸로 보였을 수 도 있다. 하지만 명장 중에 명장 김경손이 적을 얕봤을 리는 없다.
“이 고을은 어향(御鄕)이니 다른 고을처럼 적에게 항복할 수 없다.”라고 하니 부로가 모두 땅에 엎드려 울었다. 김경손이 출전을 독려했으나 좌우에서 말하기를, “금일의 사세가 군사는 적고 적은 많으니 청컨대 주군의 군사를 기다렸다가 오면 싸우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다.
김경손이 나주성의 유력자들에게 이곳이 다른 지역처럼 적에게 항복하면 안 된다고 애원하고, 출전하려고 하니까 좌우에서 병력이 부족하다며 뜯어말리는 모양새였다. 천하의 김경손이 그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라도는 한반도의 곡창 지대로 광주에 이어 나주까지 반란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고려 조정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거기다 그들이 몽골군과 손이라도 잡으면 고려는 정말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에서 말릴 정도로 병력이 부족했다. 현지에서 별초로 삼을 만한 30명을 뽑았다고는 하지만 아마 그게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니 믿을 건 김경손이라는 이름 뿐이었다. 당사자도 그걸 잘 아록 있어서 금성산신에게 가서 제사를 지내고 술을 따르고 소수의 부하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서 싸우려고 했다. 성문을 열어주지 않고 꾸물거리자 베어버리려고까지 하면서 말이다.
김경손 입장에서는 일단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소수의 병력만 가지고는 언제까지나 나주성을 반란군으로부터 지킬 수는 없었다. 따라서 위험하더라도 선제 공격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행운이 따랐다. 이연년이 김경손이 이름값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를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서 지휘관으로 삼을테니 부하들에게 죽이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리고 부하들이 그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틈을 타서 김경손의 부하들이 잽싸게 이연년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백제 부흥의 꿈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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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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