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 미국서 담관암 신약 허가…직접 상업화 발판
ABL·한올은 파트너사 결정에 발목…주가도 약세
"팔고 끝 아닌 완주로"…K바이오 수익구조 변해야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초기 단계 파이프라인을 기술수출(L/O)하는 국내 바이오텍의 사업 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진단이 나왔다. 추석 전후 사례를 보면 분명하다. 끝까지 자체 상업화를 추진한 HLB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국내 바이오텍 최초로 항암제 품목허가를 받았다. 반면 전임상 실험 등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 파이프라인을 기술수출한 에이비엘바이오와 한올바이오파마는 파트너사의 결정에 발목이 잡혔다.
조 단위 기술수출이라도 계약 즉시 받는 업프론트(선급금)는 5% 내외에 그친다. 나머지는 파트너사가 임상 등 신약 개발 단계를 넘겨야만 수령 가능한 마일스톤이다. 파트너사의 판단에 회사 가치가 좌우되는 구조인 셈이다. 국내 바이오텍이 시장에서 안정적인 평가를 받으려면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LB는 코스닥 시장에서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장 대비 29.95% 오른 3만9700원에 거래되고 있다. HLB의 미국 자회사 엘레바 테라퓨틱스가 올해 추석 연휴 첫째 날인 지난 23일 FDA로부터 담관암 치료제 '리픽투'의 품목허가를 받은 덕분이다.
담관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는 대표적인 난치암이다. 현재 널리 쓰이는 1차 치료제도 환자의 생존 기간을 유의미하게 늘려주지는 못했다. 리픽투는 일부 담관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유전자 변이를 표적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해준다. 국내 바이오텍으로는 처음으로 미충족 수요가 큰 항암 분야에서 미국 규제 기관 허가를 받아 직접 상업화에 나설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반면 파트너사의 개발 차질에 발목이 잡힌 에이비엘바이오와 한올바이오파마는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에이비엘바이오와 한올바이오파마의 주가는 오후 2시 기준 전장 대비 각각 0.79%, 6.22% 감소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경우 미국 파트너사 컴패스 테라퓨틱스가 FDA로부터 담도암 신약 '토베시미그(ABL001)'의 추가 임상을 권고받은 게 악재가 됐다. 토베시미그는 에이비엘바이오가 2018년 임상 1상 단계에서 기술수출한 파이프라인이다. 이번 품목 허가만 받으면 설립 이후 첫 상업화 로열티가 나오는 신약이 될 예정이었다.
항암제 상용화의 최종 문턱은 환자의 생존 기간을 유의미하게 늘릴 수 있는지가 판가름한다. FDA는 품목 허가에 앞서 토베시미그의 전체생존기간(OS) 개선이 입증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글로벌 임상 2/3상 결과가 품목 허가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마일스톤 유입 시점도 함께 밀리게 됐다.
한올바이오파마는 아예 파트너사가 수출한 기술의 개발을 중단했다. 한올바이오파마는 2017년 전임상 단계이던 아이메로프루바트를 이뮤노반트 모회사 로이반트에 기술수출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약 5800억원(5억250만달러)였다. 여기서 임상 단계별로 수령 가능한 마일스톤은 약 90%로 책정됐다.
하지만 이뮤노반트는 지난 23일 자가면역질환 신약 후보물질 '아이메로프루바트'의 피부홍반 루푸스 적응증 개발을 중단했다. 현지 임상 2상에서 가짜약(위약) 대비 피부 병변 개선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응증이 줄면서 수령 가능한 최대 마일스톤 금액도 축소됐다.
두 회사가 흔들린 배경에는 초기 임상 단계에 파이프라인을 기술수출할 수밖에 없는 자금 조달 구조가 있다. 대부분의 바이오텍은 신약 후보물질 발굴 등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정부 지원을 받지만, 대규모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임상 단계부터는 대부분의 정부 지원이 끊긴다. 이때부터는 벤처캐피탈(VC) 등 민간 자본을 통해 연구개발(R&D)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 자본은 성공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바이오텍에 쉽사리 투자하지 않는다. 이때 기술력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가 기술수출이다. 기업공개(IPO), 투자 유치 등을 위해 초기 단계에라도 파이프라인을 넘기려는 유인이 생기는 배경이다.
문제는 누구도 초기 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에 비싼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실한 수익원인 업프론트는 물론, 전체 계약금 규모도 후기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파이프라인일수록 높게 받는다. 게다가 초기 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은 파트너사의 사업 방향에 따라 개발이 중단되거나 반환될 가능성도 큰 만큼 구조적으로도 부담이다.
컨설팅 전문업체 인트라링크스 코리아의 박성환 대표이사는 "글로벌 빅파마들도 레이트 스테이지(후기 임상)로 갈수록 더 높은 금액을 낸다"며 "디스커버리(개발 초기 파이프라인)나 플랫폼 에셋(자산)은 3100억원(2억3000만 달러) 수준이지만, 품목 허가 단계로 가면 약 10조원(73억 달러)로 30배 가까이 값이 뛴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리스크가 헷지되고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약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바이오텍 스스로가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을 후기 임상 시험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를 위해선 IPO에 쏠린 자금 회수 통로를 넓히고, 모험자본과 정책금융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 임상을 뒷받침하는 전용 펀드를 조성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획일적으로 기술수출을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시장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 사업을 평가할 수 있는 성숙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HLB 등의 사례처럼 후기 임상까지 자체 완주하거나 직접 상업화에 도전하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체질 개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IPO 중심의 획일적인 자금 회수 구조를 개선하고, 모험자본·정책금융 확대와 함께 개념검증(POC) 펀드 등 초기 단계 임상을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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