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관세청장이 9일 인천에서 할당관세제도 악용 불법행위 특별단속 성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관세청
물가 안정을 위해 관세를 낮춰주는 할당관세를 악용해 수입가격을 부풀리거나 배정 물량을 편법으로 늘린 수입업체들이 대거 적발됐다. 냉동고등어와 닭고기, 설탕 등 292t을 보세구역에 장기간 쌓아두며 시장 공급을 늦춘 사례도 확인됐다.
관세청은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할당관세 악용 행위를 집중 단속한 결과 총 5468억원 규모의 위반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탈세금액은 586억원이다.
관세청은 21개 수입업체를 대상으로 기획 관세조사 등을 벌여 10개 업체에서 불법·불공정 행위를 확인했다. 보세구역에서는 1572차례 현장점검을 실시해 불법 비축 물품 292t의 시장 공급을 유도했다.
0% 관세 틈타 바나나 수입가 부풀려…해외본사로 이익 이전
대표적인 사례는 할당관세율이 0%인 점을 이용해 수입가격을 높게 신고한 경우다.
바나나 수입업체 A사는 해외 본사와의 특수관계 거래를 이용해 기본관세 30%가 적용될 때 정상가격으로 신고하던 수입단가를 할당관세 적용 시 높여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세청이 제시한 예시를 보면 정상 수입단가가 10 달러인 물품을 할당관세가 적용될 때 15 달러로 신고하는 방식이다. 관세율이 0%여서 수입가격을 올려 신고해도 관세 부담이 늘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A사는 이 과정에서 국내 자회사에 남아야 할 이익을 수입대금 명목으로 해외 본사에 과다 송금하고, 매입원가를 높여 영업이익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탈루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세 인하 효과도 소비자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관세청은 A사가 관세율 인하분 가운데 약 14%를 국내 도매판매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관세청은 고가신고 200억원을 통한 영업이익 축소 사례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3900억원에 대해서는 과태료 85억원을 부과했으며 고의적인 가격신고 행위는 범칙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바지업체 내세워 할당물량 더 확보…253억원 과세예고
할당관세 물량을 더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바지업체’를 동원한 사례도 적발됐다.
C사는 수입계약부터 국내 반입까지 실질적으로 수입을 주도하면서도 여러 업체와 허위 선하증권 양수도 계약을 맺은 것으로 조사됐다.
바지업체가 할당관세 물량을 배정받아 저율관세 추천서를 발급받고 수입통관을 마치면, C사가 다시 서류상으로 물품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관세청은 C사가 이를 통해 자신에게 배정된 물량보다 많은 할당관세 물량을 확보하고 관세 인하 혜택을 편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바지업체에 지급한 수수료 등 불필요한 비용까지 판매가격에 반영해 실수요자의 구매가격을 끌어올렸다고 봤다.
관세청은 부족하게 납부한 세금 253억원을 과세예고하고 고의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범칙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소고기 최장 137일 보관…불법 비축 292t 적발
할당관세를 적용받고도 물품을 제때 시장에 내놓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
소고기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할당관세 추천요령 등에 따라 추천서 교부일부터 45일 이내에 보세구역에서 반출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업체는 최장 137일까지 물품을 보관했다.
관세청은 추천조건 위반으로 할당관세 추천이 취소된 물량에 대해 관세 194억원을 추징했다.
냉동고등어와 닭고기, 설탕 등에서도 반출 지연이 확인됐다. 신속한 유통을 위해 지정된 보세구역에서는 수입신고가 수리된 뒤 15일 이내에 물품을 반출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사례가 적발됐다.
관세청은 현장점검 1572회와 장기보관 물품 반출 안내 392회를 실시해 불법 비축 물품 292t을 적발했다. 과태료 398건과 신고지연가산세 1021건 등 총 14억원도 부과했다.
관세청은 이 같은 장기 보관이 할당관세 물품의 시장 공급을 늦추고 국내 유통가격 상승을 부추겨 물가안정 효과를 떨어뜨린 것으로 판단했다.
신고기한 30일→20일 단축…외식물가까지 특별조사
정부는 할당관세 물품이 시장에 더 빨리 공급되도록 제도도 강화한다.
관세청은 할당관세 집중관리품목의 수입신고 기한을 보세구역 반입일부터 30일에서 20일로 단축하고, 신고지연가산세 한도를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높이는 관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집중관리 대상은 올해 8월 기준 할당관세 품목 93개 가운데 냉동돼지고기와 계란가공품 등 18개 품목이다.
주무부처 장관이 물자 수급을 위해 반출을 요청하면 세관장이 보세구역 반출을 명령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지난달 18일부터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에 따라 보세구역 내 수출입물품의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명령·검사와 과태료 부과 권한도 확보했다.
특별 관세조사도 이어간다. 관세청은 지난 5월부터 고등어와 오징어 등 수산식품, 주사기와 주사침 등 정부 매점매석 금지 품목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햄버거와 치킨, 피자 등 외식물가와 밀접한 프랜차이즈 업체를 대상으로 3차 조사에도 착수했다.
이종욱 관세청장은 “할당관세는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과 실수요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마련된 제도”라며 “일부 업체의 편법적인 부당이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소비자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보세구역 현장점검과 관세조사·수사 등 가용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겠다”며 “끝까지 추적하고 엄단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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