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엔시티 127의 B급 누아르, ‘블링이’ [MV 리플레이 ㊾]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9.03 08:36  수정 2026.09.0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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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어쩔수가없다’·‘신세계’ 명장면, 보물찾기 코미디로 비틀어

금돼지와 보석 더미를 좇은 끝에 발견한 진짜 빛은 ‘멤버 자신들’

세련된 미래주의에서 유쾌한 4차원으로…10년차 127이 갱신한 ‘네오’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엔시티 127(NCT 127)이 지난달 24일 정규 7집 ‘블링이’(BLINGY)를 발매했다. 뮤직비디오는 반짝이는 것을 잃어버린 멤버들이 이를 찾아 서울 곳곳을 헤매는 이야기다. 한국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가져오지만 비장함을 오래 유지하지는 않는다. 스크린 골프장과 지하철, 중식당, 귀중품 가게를 오가는 엉뚱한 추격전으로 장르의 무게를 걷어낸다.


ⓒ엔시티 127 ‘블링이’ 뮤직비디오
줄거리


뮤직비디오는 어두운 서랍 안에서 빛나는 휴대전화를 꺼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멤버들은 사라진 ‘블링이’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서는 그저 반짝이는 빛뿐이다.


멤버들은 블링해 보이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의심한다. 스크린 골프장에서는 귀중품을 지닌 남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달려든다. 이 과정에서 재현은 상대에게 머리채를 붙잡히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가까스로 귀중품을 챙긴 멤버들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지만 손에 넣은 물건들은 어느새 빠져나가거나 사라진다.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행방을 묻기도 하지만 뚜렷한 답은 얻지 못한다. 중식당에서는 번쩍이는 금돼지를 발견하고 마침내 블링이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멤버들은 금돼지를 귀중품 가게로 가져가 보석 더미와 함께 살펴본다. 그러나 원하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밖에서 빛나는 물건을 좇던 멤버들은 마지막에야 자신들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는다. 그러자 옷 안에서 강한 빛이 새어 나온다. 이들이 그토록 찾아 헤맨 블링이는 처음부터 외부의 귀중품이 아니라 멤버들 안에 있었다.


해석


보석 박힌 휴대전화와 금돼지, 산더미처럼 쌓인 귀중품은 모두 눈부시게 빛나지만 진짜 ‘블링이’는 아니다.


재현은 앨범 발매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뮤직비디오를 두고 “블링이를 계속 찾아 나서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영상의 보물찾기는 엔시티 127이 10주년을 맞아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빛을 새로 얻거나 외부에서 인정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한국 영화의 익숙한 장면들은 이 과정을 더욱 유쾌하게 만든다. 멤버들이 ‘Blingy?’라고 적힌 종이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도청당하고 있습니다’라는 메모를 든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떠올리게 한다. 화분을 머리 위로 치켜든 장면은 ‘어쩔수가없다’를, 바다와 배를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신세계’의 미장센을 연상시킨다.


다만 원작의 긴장과 비극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다. 살인과 감금, 배신의 기운이 감돌던 장면들은 엔시티 127의 뮤직비디오에서 허술한 해결사들의 추격전으로 바뀐다. 골프장에서 머리채를 잡히고, 금돼지를 들고 지하철을 타며, 어렵게 모은 귀중품을 허무하게 잃어버린다. 누아르의 형식을 가져왔지만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몸개그다.


팬들만 알아볼 수 있는 장난도 숨어 있다. 보석으로 장식한 휴대전화의 배경화면에는 팬들 사이에서 이른바 ‘래퍼와 래퍼 여자친구’ 사진으로 불렸던 태용과 정우의 모습이 등장한다. 군 복무로 이번 활동에 함께하지 못한 멤버의 흔적은 이스터에그를 넘어 진짜 ‘블링이’는 멤버들이라는 결말을 일곱 명의 ‘원팀’으로 확장하는 장치다.


ⓒ엔시티 127 ‘블링이’ 뮤직비디오
총평


각 유닛이 자신만의 음악과 서사를 선명하게 구축하면서 엔시티가 처음 내세웠던 실험성과 낯섦을 가장 직접적으로 지키는 역할도 점차 엔시티 127에 모였다. 네오함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웃음을 알고 자신을 패러디할 수 있는 형태로 나이를 먹었다고 볼 수 있다.


‘블링이’의 영상은 겉보기에 저렴한 소동극으로 보이지만 실제 구성은 치밀하다. 익숙한 영화의 미장센을 알아볼 만큼 남겨두면서도 원작의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고 빠른 컷과 과장된 연기로 엔시티 127의 세계 안에 편입한다.


음악 역시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거칠게 찌그러진 신스와 덥스텝, 챈팅은 위압적이지만 장난스럽고 직관적이다. 태용이 제작에 참여한 안무도 강한 힙합 동작과 여유로운 제스처를 오가며 무게와 유머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엔시티 127은 10주년을 증명하기 위해 더 비싸고 거대한 보석을 가져오기보다 자신들이 지난 10년간 쌓아온 낯선 음악과 퍼포먼스, 한국적인 도시 감각, 멤버와 팬들만 공유하는 농담을 꺼냈다. 엔시티 127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결국 엔시티 127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한줄평


보석, 금돼지, 귀중품 그리고 엔시티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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